自序
일제시대 중국 상해엔 '花妓'라고 하는 '눈먼 창녀'가 있었다. 고급 靑樓의 주인들은 전국을 돌며 가난한 집의 아주 어린,
예쁜 소녀들을 사들여와 호의호식, 공들여 사육(?)했다. 그리고 눈을 멀게 하는 약을 먹여 서서히 눈을 멀게 만들었다.
포동포동 살이 찌고 하얗게 눈이 멀면 '花妓'는 완성된다. 나는 내 스스로 '가난한 집의 아주 어린, 예쁜 소녀'인 나를
사들여와 그러한 '눈을 멀게 하는 약'을 먹였다. 그리고 '花妓'가 되었다. '눈먼 창녀'로서의 나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나의 詩는 그렇게 '눈을 멀게 하는 약'으로서의 '毒'이며 동시에 그러한 '毒'을 해독하는 해독제로서의 '藥'이기도 하다.
나는 그렇게 官能의 주체였으며 동시에 객체로서의 詩人이었던 것이다. '눈먼 창녀'여, '관능의 화신'이여! 나는 즐겁고,
그리고 莊嚴하다. 내가, '漆黑'의 그 모난 자갈밭처럼 더듬으며 운다. 당할 '성적 학대'를 다 당하고, 그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나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작품 배열은 長考 끝에 '아무렇게나' 했으니 부디 '아무렇게나'읽어주기를 바란다.
너무 오랫동아 무슨 마른 '北魚 대가리'같을 삶을 살아서 그런지 어떤 부드러움, 부드러운 육체와 영혼과의 스킨십이
조금은 그리웠나 보다. 좌우지간 7년 만에 일곱 번 째 시집이라니… 폐일언하고 눈물겹다. 시집을 냄으로써 나는 겨우 이런 式으로
내가 그리워한 (?) 이 세상과의 스킨십을 할 뿐이다.
"잘 먹고 갑니다…"
음식을 먹고 각자 음식값을 지불하듯 이 地上에 머무는 동안 나는, 아니 나도 겨우 이런 式으로 스킨십을 하며 이런 式으로 더치 페이를
한다. 나는 堂堂하다.
…하염없이 삐꺽이는, 내 육체와 정신의 高樓巨閣, 그 아득한 望臺에서, 아아, 꽝꽝, 얼어붙은 내 참혹한 육체와 정신의
그 푸른 白夜에서, 나는 드디어 내 영혼의 强力한 極光을 發한다!
부디 용서하소서… 나는 그저 기도할 뿐이다.
별이 쏟아지고, 그리고 나는 그 쏟아지는 별을 나의 두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내 눈동자가 이미 그리고 온통, 나를 바라보는
한 아름다운 소녀의 눈동자 같다. 별빛이 나의 全身을, 그 앙상한 全裸의 全身을 鍍金하는 아름다운 가을밤이다.
2001년 9월 김영승
-시집 『무소유보다도 찬란한 극빈』중에서
얼마 전 선물로 받은 선생님의 시집이다.
나는 시집을 볼 때 맨 먼저 읽는 것이 바로 '自序', '시인의 말'이다.
처음 이 글을 읽는 순간 내 가슴은 한없이 먹먹해졌다.
가까이서 보는 선생님과 오버랩되면서 이 글의 어느 한 구절도 내가 아는 선생님의 모습과 위배되는 것이 없다는 것,
그래서 읽는 나로하여금 숙연해지게 하는 것이었다.
'詩生一如', 이 말은 선생님 스스로 자신의 시에 대해 하시는 말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쓴 시에 대해서는 언제나 거짓 없이 당당하다고...
시인은 자신의 시에 고백을 할지언정 변명을 해서는 안 된다고...
내가 가장 감사한 것은 선생님을 만난 것이다.
그것은 내 인생에 참으로 큰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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