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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이 주의 시인 김영승> 꽃처럼 환한 너니까 -:2016년 1월 23일자

kiku929 2016. 1. 25. 10:52

등록 :2016-01-22 21:28수정 :2016-01-23 14:05
이 주의 시인 김영승



김영승, 나의 시를 말한다



추운 날 밤


김영승


여태까지 안 잤니
얘는 참
알았다 알았어
내가 있어야겠구나
너한테 내가 必要(필요)한 건
사랑이다
 

춥니
그런 草露人生(초로인생) 덧없다 생각되니
그렇게 생각될 때
고요한 눈매의 한 사람을 만나면

질긴 힘줄 질겅질겅 씹으며
인생 짧은 게
하늘의 榮光(영광)이며
땅 위의 至福(지복)임을
둘이서 함께 느껴간다

내 몸 부서지어
흐른다

사랑할 때
사람은 그 한때에
사는 거다

그밖의 덧없음
들춰내어 서글퍼지면
서글프기에 즐겁게
그래도 죽을 때까지
우리는 곧잘 살아간다 배고플 때 밥 먹고
그리고 너는
여기저기 밥먹음의
非理(비리)와도 싸운다

그래서 외로울 때
아직 자지 않고 있었구나
詩(시)를 쓰고 있었구나
잘 살자.

<아름다운 폐인> (미학사, 1991) 수록




작년에 책 한 권이 배달되어 와 뜯어보았는데 제2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한은형의 장편소설 <거짓말>이었다. ‘김영승 선생님께’라는 저자 사인을 넘겨 두 장을 더 넘기니까 ‘차례’ 바로 전 간지(間紙)엔 다음과 같은 나의 시가 무슨 주제처럼 인용되어 있었다.



소녀야
순결을 잃었다고 하지 말고
일찍 데뷔했다고 하라

글쎄
요절했다고 하지 말고
일찍 데뷔했다고 하라니까

―졸시 ‘권태 13’ 중에서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권태 13’이 수록된 나의 시집 <권태>(책나무, 1994)를 겨우 찾아 그 ‘권태 13’ 전문을 보니 “이 부분은 필자의 졸시 ‘반성 745’, <반성>(민음사, 1987)에서도 비슷한 투의 말을 한 적이 있으니 참조할 것”이라는 하단 각주가 붙어 있었고, 나는 또 그 시집도 그야말로 천신만고 끝에 겨우 찾아 그 부분을 펼쳐 보았었다.



당신을 사랑해요 혹시
텅 빈 구멍을 메꿀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결국
음흉하고 비열한 고백 속에서
아름다운 여인이여 그대는
재림한다고 하지 말고 해결한다고 하라
재혼한다고 하지 말고 해결한다고 하라
글쎄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해결한다고 하라

―졸시 ‘반성 745’ 중에서



그래 놓고 나니 역시 기분이 좋았었다.


고독하다고? 요즘 혼밥이니 혼술이니 하는 용어가 횡행하여 어리둥절했었는데 그 혼술이라는 것이 이백에게나 김영승에게나 흔했던 것을 생각하면 혼밥도 흔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사각송반엔 죽 한 그릇/ 푸른 하늘과 흰 구름 함께 떠도네” 읊으며 얻어먹은 김삿갓의 그 죽 한 그릇은 혼밥인가? 시인은 “저에게 있어서/ 충분한 휴식은/ 충분한 고독을 의미합니다”(졸시 ‘반성 641’)라고 하고 있는데.


나는 다음과 같은 시를 쓴 적도 있다.



우리는 이젠
그동안 우리가 썼던 말들을
쓰지 않을지 모른다.

사랑한다는 말
외롭다는 말

그리고
그립다는 말.

밤이면 기관포처럼
내 머리로 쏟아지는
별.

―졸시 ‘별’ 전문



별은 너무 먼가?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그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는 일차적으로는 ‘그’가 ‘너’가 되는 그 극적인 순간을 ‘기쁨’으로 설의(設疑)하고 영탄하고 있다.


‘너’를 의미하는 한문의 너 ‘이’(爾) 자는 ‘바로 내 눈앞에 활짝 피어 눈부시고 아름답게 빛나는 아주 환한 꽃’의 상형인데, 그렇기 때문에 그 ‘나’와 함께 현존하며 동행하는 존재로의 그 너 ‘이’ 자는 곧 ‘가깝다’는 뜻이며, 그 너 ‘이’ 자에 쉬엄쉬엄 갈, 혹은 잠시 가고 잠시 머무를, 혹은 달릴 ‘착’(辵) 자의 변형인 책받침 ‘착’(辶)을 더하여 가까울 ‘이’ 자가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귀결이고 또한 의미심장하다. 그래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 ‘꽃’)는 말은 어쩌면, 아니 당연히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너’가 되었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즉 ‘그’가 ‘나의 너’가 된 것이다. 내가 ‘너의 나’이듯이.


그 너와 내가 지금 배가 고프고 춥다. 그래서 내 몸 부서지어 흐른다. 그래서 내 몸이 부서지어 흐르다니 그러면 된 것이다. 꽃처럼 환한 너니까.


그 별이 꽃이 말한다. “하늘의 榮光(영광)이며/ 땅 위의 至福(지복)임을/ 둘이서 함께 느껴”가라고.


김수영은 “이 시대는 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요구하는 밤”이라고 했지만. “그러한 밤에는 부엉이의 노래를 부를 줄도 안다”고 했지만. 그 ‘부엉이의 노래’는 결국은 ‘하나의 명령’이라고도 했지만(이상 ‘서시’). 그 ‘하나의 명령’은 결국은 자기가 자기 자신한테만 내릴 수 있는 명령 아닌가. 아니 자기한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자가 결국은 자기 자신뿐 아닌가? 또 그래야만 되는 것 아닌가. 내 앞에 네가 있다. 어떤 명령을 내릴 것인가.


웰빙이라고? 웰다잉이라고? 그래도 “죽을 때까지/ 우리는 곧잘 살아간다.” 그 모든 것이 ‘데뷔’고 ‘해결’이라 할지라도.





김영승
    
김영승




김영승

1958년 인천 출생. 1986년 계간 <세계의 문학> 가을호에 발표한 ‘반성·序(서)’ 외 3편의 시로 데뷔했다. 시집 <반성> <車(차)에 실려가는 車> <오늘 하루의 죽음> <아름다운 폐인> <흐린 날 미사일> 등을 냈다.






총체적 반성, 곧 휘발할 운명의

반성은 알코올처럼 휘발성이다. 반성하는 순간의 깨달음과 결심은 다음날과 그 다음날로 이어지는 일상의 대기 속에 날아가 버린다. 반성은 또 다른 반성의 연쇄작용을 통해서만 처음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반성의 ‘고인 물’은 있을 수 없다.


우리 시에서 반성(의 휘발성)을 온몸으로 살아낸 시인은 김수영에 이어, 김영승이다. 지독한 반성의 근기(根氣)로 이들은 매일 계속되는 비루한 생활의 전위에 섰고, 당대 사회의 부정성을 자신의 부정성과 함께 혁파하는 시적 실천의 전위에 섰다. “나는 내가 쓴 시 꼭 그만큼밖에 할 말이 없으므로,/ 그러므로 내 시는 다 진실하다. 그러면 됐다.”(‘자서’, <화창>)


김영승의 시는 ‘정직성’의 투입과 산출을 정확히 일치시키려는 윤리적 고투의 산물이다. 그는 언어의 모호성이나 수사적 효과에 기대지 않는다. 독자를 당황케 하는 갖은 욕설과 철학적이며 성적인 요설, 난데없는 시인 자신의 등장(“영승아”), 기이하게 이어지는 문맥 등은, “시를 이리저리 자유롭게 운영하고 갖고 놀다 팽개치기도 하지만 팽개친 그 자리에서도 여전히 시”인 김영승 시의 “천재”성(시인 함성호)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김영승의 첫 시집 <반성>(1987)에 실린 83편의 ‘반성’ 연작은 일련번호가 독특하다. 없는 번호가 훨씬 더 많고, 순서도 뒤죽박죽이다. 반성 83, 반성 80, 반성 591, 반성 641, 반성 21 등과 같은 식이다. 반성의 연쇄작용은 삶의 도처에서 파편적으로, 그러나 수백 번 거듭되며(여기서 수백 번은 ‘끝없음’과 같다), 이런 점에서 김영승이 쓴 모든 시는 ‘반성’ 연작에 속한다.


김영승에게 반성의 대상은 삶의 모든 것, 세계의 모든 것이다. 방금 한 반성도 즉시 포함되는 이 총체적인 반성의 세계에는 오직 현재형만이 유효하다. 다르게 보고, 뒤집어 읽고, 삐딱하게 듣고, 가차없이 말하는 모든 실시간의 사유와 행위가 반성이다. 곧 휘발할 운명의.



김수이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한겨레 신문에 선생님의 시가 소개되었다.


언젠가 사석에서 선생님께 질문한 적이 있다.

자신을 수식하는 말 중에 어떤 말이 가장 마음에 드는지를.

그때 선생님은 '시인'이 아닐까 한다고...

철학자, 교수라는 말보다

자기한테는 시인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말을 하셨다.


한평생 시인으로서만 살아오신 분...

돈이 권력이 된 지금의 시대에서 시인으로서의 삶을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내면에 도저한 정신이 없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