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채용 통보
반칠환
아무도 거들떠보도 않는 저를 채용하신다니
삽자루는커녕 수저 들 힘도 없는 저를,
셈도 흐리고, 자식도 몰라보는 저를,
빚쟁이인 저를 받아주신다니
출근복도 교통비도, 이발도 말고 면도도 말고
입던 옷 그대로 오시라니
삶이 곧 전과(前過)이므로 이력서 대신
검버섯 같은 별만 달고 가겠습니다
미운 사람도 간다니 미운 마음도 같이 가는지 걱정되지만
사랑하는 사람도 간다니 반갑게 가겠습니다
민들레도 가고 복사꽃도 간다니
목마른 입술만 들고, 배고픈 허기만 들고
허위허위 는실는실 가겠습니다
살아 죄지은 팔목뼈 두개 발목뼈 두 개
희디희게 삭은 뼈 네 개쯤 추려
윷가락처럼 던지며 가겠습니다
도면 한 걸음, 모면 깡충깡충 다섯 걸음!
고무신 한 짝 벗어 죄 없는 흙 가려넣어
꽃씨 하나 묻어 들고 가겠습니다
돌아보면 참 많이도 죄지었다.
나로인해 누군가 외로워하고, 나로인해 누군가 힘들어했다면
그 또한 모두 나의 죄인 것을...
그래도 자연은 모두 받아준다.
죄지은 마음, 죄지은 몸,
모두 바람 속에 흙 속에 안아준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제 가슴을 고스란히 내어준다.
사람의 마음을 가진 것이 미안하기만 한 아침...
멀리 창밖으로 시선이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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