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우리 머물며
이기철
풀꽃만큼 제 하루를
사랑하는 것은 없다
얼만큼 그리움에 목말랐으면
한 번 부를 때마다 한 송이 꽃이 필까
한 송이 꽃이 피어 들판의 주인이 될까
어디에 닿아도 푸른
물이 드는 나무의 생애처럼
아무리 쌓아 올려도
무겁지 않은 불덩이인 사랑
안 보이는 나라에도 사람이 살고
안 들리는 곳에서도 새가 운다고
아직 노래가 되지 않은 마음들이 살을 깁지만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느냐고
보석이 된 상처들은 근심의
거미줄을 깔고 앉아 노래한다.
왜 흐르느냐고 물으면
강물은 대답하지 않고
산은 침묵의 흰 새를 들 쪽으로 날려보낸다
어떤 노여움도 어떤 아픔도
마침내 생의 향기가 되는 근심과 고통 사이
여기에 우리 머물며
잠시 여행을 떠납니다.
떠나면서 내 방에도 이 시처럼 희망적이고 따스한 꽃씨 한 점 심어두고 갑니다.
그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이 꽃씨에서도 어여쁜 꽃들이 만발하겠지요.
'나는 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생이라는 걸 아마 내가 지금보다 덜 사랑했더라면 내게 슬픔은 절반으로 줄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생이라는 거,
이 지상에서의 시간들을 난 너무나도 사랑하니까요.
그래서 작은 거 하나도 스치지도 떨구지도 못하고 자꾸만 돌아보게 되는군요.
풀꽃이 제 하루를 사랑하듯이...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유소 / 윤성택 (0) | 2010.01.12 |
---|---|
산경 / 도종환 (0) | 2010.01.12 |
어떤 채용 통보 / 반칠환 (0) | 2010.01.12 |
기다림 / 이성복 (0) | 2010.01.12 |
고요하다 / 정재영 (0) | 2010.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