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유월의 독서/ 박준

kiku929 2016. 11. 24. 10:20




유월의 독서



박준



그림자가

먼저 달려드는

산자락 아래 집에는


대낮에도

불을 끄지 못하는

여자가 살고


여자의 눈 밑에 난

작고 새카만 점에서

나도 한 일 년은 살았다


여럿이 같이 앉아

울 수도 있을

너른 마당이 있던 집


나는 그곳에서

유월이 오도록

꽃잎 같은 책장만 넘겼다


침략과 주름과 유목과 노을의

페이지마다 침을 묻혔다


저녁이 되면

그 집의 불빛은

여자의 눈 밑 점처럼 돋아나고


새로 자란 명아주 잎들 위로

웃비가 내리다 가기도 했다


먼 능선 위를 나는 새들도

제 눈 속 가득 찬 물기들을

그 빛을 보며 말려갔겠다


책장을 덮어도

눈이 자꾸 부시던

유월이었다






시마다 개성이 있어서 각각의 좋은 점이 있지만

그것은 나와 맞는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내가 좋아하는, 나와 맞는, 이러한 개인적 취향으로 고르게 된다면

나는 아마도 이러한 어투의 시를 택할 것이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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