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양 기르기 / 안희연

kiku929 2016. 12. 15. 20:13




양 기르기




안희연





네가 아는 가장 연약하고 보드라운 것을 생각해 봐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한 마리

작은 양이었다


너는 그것을 잘 돌봐줄 것을 당부했다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그날, 꿈속에서 너를 본 이후로

나는 양과 함께 살아간다


목이 마르거나 춥진 않을지

간밤 늑대의 습격을 받은 것은 아닌지


그러다가도 잔뜩 뿔이 나

있지도 않는 양 따위,라고 중얼거린다


턱 끝까지 쌓인 눈을 헤치며 탈출하던 밤

너를 구했다고 생각했는데 손을 놓쳤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긴 외출에서 돌아왔는데 집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거나

양말 한 짝이 감쪽같이 없어졌을 때에도


녀석의 목덜미를 끌어다 놓고

장난하지 말라고 또박또박 혼을 내는 스스로에게 놀란다


내가 만진 것은 무엇이었을까


누군가는 물고기를 기르고

누군가는 북극곰을 기르고

함밤중에 잠에서 깨어나 소리 없이 우는 사람 곁에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요즘 시 중에 자주 환상적, 동화적 느낌의 시들이 보인다.

유행이라고 볼 수 있을까?

아니면 낯설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환상을 차용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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