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역사 도시 서울에 대한 사랑과 자랑을 담아 썼다"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입력 2017.10.14. 18:00
“서울은 누구나 다 잘 아는 곳이다. 굳이 내 답사기가 아니라도 이미 많은 전문적·대중적 저서들이 넘칠 정도로 나와 있다. 그래도 내가 서울 답사기를 쓰고 싶었던 것은, 서울을 쓰지 않고는 우리나라 문화유산답사기를 썼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로 유명한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 명지대 교수가 최근 ‘서울편’을 펴내 인기몰이 중이다. 이번에 출간된 서울편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고도(古都) 서울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며, 그간 안다고 생각했으나 실은 제대로 알지 못하던 서울의 내력과 매력을 깨우쳐줄 것이다.
“서울은 다름 아닌 내 고향이다. 서울 사람으로 태어나 서울 사람으로 일생을 살아간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늘 있어왔다. 특히 내가 느끼는 인사동·북촌·서촌·자문밖·성북동은 지금 젊은이들이 보고 즐기는 것과 너무도 차이가 많아 그 구구한 내력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것은 훗날 현대 생활문화사의 한 증언일 수 있다는 약간의 의무감 같은 것도 있었다.”
서울이 ‘궁궐의 도시’라 말할 수 있는 이유
오늘날 서울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대도시로서 최고와 최하가 공존하는 모순을 품고 있다. 그만큼 모순과 격차가 많아 복잡한 서울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이 문화유산이라고 강조하는 유홍준 교수는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서울의 이야기를 자랑과 사랑을 담아 써냈다.
“조선 왕조 500년 도읍지로서 서울의 역사와 위용을 자랑하는 유적은 무엇보다도 궁궐이다. 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경운궁)·경희궁 등 5대 궁궐은 비록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고의적인 파괴로 원 모습을 잃었지만, 현재 남아 있는 건물만으로도 조선 왕조의 기품과 궁중 문화의 장려함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5대 궁궐이 있기에 서울은 서울일 수 있는 것이다.”
유 교수는 역사 도시로서 서울의 품위와 권위는 무엇보다도 조선왕조 5대 궁궐에서 나온다며 서울 답사의 첫 관문으로 궁궐을 택했다. 조선왕조의 상징적 문화유산인 종묘를 시작으로 창덕궁과 창덕궁 후원, 그리고 창경궁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조선 건축의 아름다움, 왕족들의 삶과 애환, 전각마다 서린 수많은 사연 등을 그윽하게 풀어낸다.
“종묘와 창덕궁은 이미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만 해도 생각이 좀 모자랐던 것 같다. 제대로 문화외교 전략을 펼쳤다면 서울의 5대 궁궐을 한꺼번에 등재했어야 했다. 일본 교토(京都)는 14개 사찰과 3개 신사를 묶어 등재했고, 중국의 쑤저우(蘇州)는 9개 정원을 동시에 등재했다. 그리하여 세계만방에 교토는 사찰의 도시, 쑤저우는 정원의 도시임을 간명하게 각인시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은 궁궐의 도시다.”
궁궐은 다 비슷비슷한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는데, 경복궁과 창덕궁을 비교 설명하는 유 교수의 설명을 들으면 다시 한 번 궁궐을 찾지 않을까 한다.
“경복궁은 백악과 인왕산이라는 아름답고 장중한 산이 마치 후원의 뒷산인 양 편안하면서도 권위 있게 자리 잡은 왕궁이다. 창덕궁은 조선 왕조의 세련된 공간 경영을 보여준다. 인왕산과 백악을 한쪽으로 비껴두고 멀찍이서 바라볼 수 있는 산자락에 기대어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궁궐의 권위는 권위대로 유지하면서 집으로서의 편안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그래서 역대 조선의 왕들은 5대궁 중에서 유독 창덕궁에 기거하기를 원했다. 창덕궁 건축의 조선적 특징과 세련미는 3조의 배치에 두드러진다. 3조란 외조(外朝)·치조(治朝)·연조(燕朝)를 말한다. 외조는 의례를 치르는 인정전, 치조는 임금이 정무를 보는 선정전(宣政殿), 연조는 왕과 왕비의 침전(寢殿)인 대조전이 주 건물이다. 경복궁에서는 이 3조가 남북 일직선상에 있지만, 창덕궁에서는 산자락을 따라가며 어깨를 맞대듯 나란히 배치되었다. 그래서 경복궁에 중국식의 의례적인 긴장감이 있다면, 창덕궁은 편안한 한국식 공간으로 인간적 체취가 풍긴다고 하는 것이다.”
서울의 매력은 자연 입지조건의 탁월함에서 시작
유홍준 교수는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서울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이 고장을 제대로 음미하며 즐기면서 생활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느꼈다. 또 서울 이외의 지역에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 역시 서울을 경주나 교토·파리 같은 역사 도시의 하나로 생각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당시 외국인, 특히 동양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많은 외국의 문화인들이 말하는 서울의 매력은 자연 입지조건의 탁월함에서 시작했다. 인천공항·김포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오기 위해 강변도로를 달리다 보면 이처럼 큰 강을 끼고 있는 도시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놀라워했다. 그리고 시내의 호텔로 들어서면 인왕산·백악산·남산이 그리는 스카이라인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서울 시내는 어느 곳에서도 자연이 드라마틱하게 감지되며 도심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 서울은 파리의 에펠탑이나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같은 랜드마크 건물이 애당초 필요 없는 곳이라고 이해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천혜의 자연 입지조건을 저버리고 우뚝우뚝 솟은 빌딩들을 서울의 불행한 난개발이었다고 안타까워하곤 했다.”
유 교수 또한 한강과 백악·인왕·남산은 서울의 움직일 수 없는 아름다운 바탕색이라고 설명한다.
“서울의 진산(鎭山)인 북한산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고 장엄한 산이지만, 등산 진입로마다 문화유적을 갖고 있어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이 어우러진 명산이 되고 있다. 구파발 쪽의 북한산성과 행궁터, 진관사와 진흥왕 순수비, 삼천사의 마애여래입상, 승가사와 마애석가여래좌상 등이 그 대표적 유적인데, 그 보존 환경은 명산의 이름에 걸맞은 것이 못돼 안타까울 따름이다.”
New Book
'冊'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별 인사 / 김영하 (복복서가, 2022) (0) | 2022.06.14 |
---|---|
신형철<<정확한 사랑의 실험>>중 첫 장, '책머리에'를 옮겨본다 (0) | 2019.01.06 |
시집 『무소유보다도 찬란한 극빈』중에서 <自序> (0) | 2016.11.05 |
읽을 책 (0) | 2016.06.24 |
百의 그림자 / 황정은 장편소설 / 민음사, 2010 (0) | 2015.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