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철<<정확한 사랑의 실험>>중 첫 장, '책머리에'를 옮겨본다

kiku929 2019. 1. 6. 13:21

 

 

  나는 해석자다. 해석자가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다. 해석은 기술이기 때문에 비평은 직업이 될 수 있다. 해석이란 무엇인가. 해석학 (hermeneutics)이라는 명칭 안에 전령사 헤르메스(Hermes)의 이름이 섞여 잇는 것은 해석이라는 행위의 본질이 전달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암시한다.

그러나 해석자는 이미 완성돼 있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잉태하고 잇는 것을 끌어내면서 전달한다. 그러므로 해석은 일종의 창조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지만, 잠재적 유에서 현실적 유를, 감각적 유에서 논리적 유를 창조해낼 수는 있다. 원칙적으로 해석은 무한할 수 있지만, 모든 해석이 평등하게 옳은 것은 아니다. 정답과 오답이 있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더 좋은 해석과 덜 좋은 해석은 있다. 이를 가르는 기준은 다양할 텐데, 나에게 그것은 '생산된 인식의 깊이'다. 해석으로 생산된 인식이 심오할 때 그 해석은 거꾸로 대상 작품을 심오한 것이 되게 한다. 이런 선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해석이 좋은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해석은 작품을 다시 쓰는 일이다. 작품을 '까는' 것이 아니라 '낳는' 일이다. 해석은 인식의 산파술이다.

 

  모든 해석자는 '더' 좋은 해석이 아니라 '가장' 좋은 해석을 꿈꾼다. 이 꿈에 붙일 수 있는 이름 하나를 장승리의 시「말」의 한 구절에서 얻었다. "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었어". 내게 이 말은 세상의 모든 작품들이 세상의 모든 해석자들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렇다면 해석자의 꿈이란 '정확한 사랑'에 도달하는 일일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나는 어디선가 이런 말을 했다. "비평은 함부로 말하지 않는 연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들에 대한 폭력적이 단언을 즐기는 사람들도 당사자의 면전에서는 잘 그러지 못합니다. 어쩌면 비평은 함부로 말하지 않기 위해 늘 작품을 앞에 세워두는 글쓰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작품 없이는 말할 수 없다는 이런 제약이 저는 가끔 축복 같습니다. (…) 저는 인간이 과연 어디까지 섬세해질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섬세한 사람이 되어볼 수는 없을까 생각합니다. 저 자신을 대상으로 삼아 실험해보고 싶습니다. 이 말은, 제가 실제로는 섬세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고, 그래서 계속 비평을 열심히 쓰겠다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라는 제목이 태어났다.

 

  2012년 여름부터 2014년 봄까지 연화 주간지 <씨네21>에 '신형철의 스토리-텔링'이라는 타이틀로 매달 연재한 글들에다가 다른 지면에 쓴 글 세 편을 함께 엮어 이 책을 만들었다. 글들을 네 개의 주제로 나눠 묶고 보니 비평가로서의 내 관심사가 대개 이 넷으로 수렴된다는 것을 알겠다. 이 책의 저자가 영화평론가가 아니라 문학평론가라는 점은 이 책의 개성과 한계 모두에 관계한다. 그래서 연재 지면에 늘 이런 추신을 달았었다.

"영화라는 매체의 문법을 잘 모르는 내가 감히 영화평론을 쓸 수는 없다. 영화를 일종의 활동서사로 간주하고, 문학평론가로서 물을 수 있는 것만 겨우 물어보려 한다.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하고. "둔한 내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책을 읽을 때처럼 영화를 보고 또 보는 것뿐이었다. 한 편의 영화를 영화관에서 대여섯 번 보고 나서 열 줄로 이루어진 단락 열네 개를 쓰고 나면 한달이 갔다. 누군가에게는 이 책이 부정확한 사랑의 폐허로 보이겠지만,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고 변명할 수는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

 

  애초 계획에 없었던 것이므로 나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책이다. 이 선물을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연재를 제안해준 <씨네 21>의 김혜리 기자님 덕분에 이 모든 일이 시작될 수 있었다. 그가 쓰는 모든 글의 독보적인 섬세함을 나는 열렬히 흠모한다. 내게 주어진 지면을 담당했던 신두영 기자님에게도 감사드린다. 감사보다는 사과가 필요할 정도로, 한 달에 한 번 지독한 마감 전쟁을 함께 치러주셨다. 박찬욱 감독님께 감사드릴 이유가 있어 기쁘다. 연재 도중 감독님으로부터 날아온 전갈은 결정적인 격려가 되었고, 보내주신 추천사를 읽은 밤에는 두려워서 잠이 오지 않았다. 마음산택 정은숙 대표님의 호의와 담당 편집자 박지영 님의 노고 덕분에 결국 책이 나올 수 있었다. 나보다 더 내 글을 귀하게 여기는 이를 만나 함께 책을 만드는 일의 행복은 글 쓰며 사는 이에게만 주어지는 과분한 특혜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 내 아내 신샛별은 이 책이 다룬 거의 모든 영화를 함께 보았고 최상의 토론 상대자가 되어주었으니 사실상 공동저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에 실린 글 중 하나를 나는 프러포즈를 하기 위해 썼다. 그녀를 정확히 사랑하는 일로 남은 생이 살아질 것이다.

 

 

2014년 가을

 

신형철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마음산책,2014)중에서

 

 

 

 

*

옮기기에는 제법 긴 글이었지만 그 노고가 아깝지 않는 글이어서 옮겨보았다.글이 아름다운 것은 문체 뿐만 아니라 그 안에 깃든 글쓴이의 마음이 더해져서이다.

 

이 글을 읽을 때마다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은 신형철 평론가의 작품을 대하는 태도이다. 비평은 "함부로 말하지 않는 연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석으로 생산된 인식이 심오할 때 그 해석은 거꾸로 대상 작품을 심오한 것이 되게 한다. 이런 선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해석이 좋은 해석이라고 생각한다",이런 말은 작품을 소중하게 여기고 작품 앞에서 겸손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말이다. 특히나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 이런 문장은 독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허세로 읽히겠지만 그에 동의하게 된다면 숙연해지게 만든다. 아무리 생각해도 최선을 다했다니...

영화 한 편의 비평을 쓰기 위해서 영화관에서 대여섯 번을 보고나서 글 쓰는데 한 달을 보냈다고 한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만 하지 않은가. 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1월은 신형철 평론가의 글과 함께 보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