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안녕 / 박진성

kiku929 2018. 3. 21. 13:47


안녕

 



박진성

 



 

주치의 춘천으로 발령 나서

새 병원 찾아가는 길

잘못 나온 꽃잎 몇 개

안녕,

대기실 의자에 앉아

아까 본 목련 꽃잎을 자꾸만 바라보는데

간호사 하나가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거라

허만하 시집 갈피 사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모래알,

안녕, 이라고 애써 고개 파묻고 있었는데

박진성님......카운터로 걸어가는데

뒷목덜미를 꽃이 잡아끌었는데

저기, 진성이 아니니.....간호사가 안녕,

고등학교 동창 선경이가,

웃을 수도 울을 수도 없는 표정으로

안녕,

미래신경정신과 수간호사가 되어 있는 거라

상습 불면, 자살 충동, 공황 발작,

차트를 오래오래 쳐다보는 거라

조제실에서 알프라졸람과 바리움을 봉지에 넣고 있는

스물일곱의 네 손가락은 기다란 의자에 앉아 약을 기다리는 스물일곱의 내 엉덩이에

근육이완제를 주사하겠지

엉덩이를 까고 창문을 바라보는데

바람을 못 이긴 목련이 툭, 떨어지는 거라

자주 보겠네, 그 말 한마디가

입안에서 궁글고 있는 알약처럼 서걱거리는 거라

안녕, 안녕,

병원 문 열고 나오는데

목숨 끊고 거리를 자유비행하는 목련 한 꽃잎

안녕,




- 시집 『목숨』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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