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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 하늘 / 김중일

kiku929 2018. 4. 14. 22:43




고인 하늘




김중일




집 앞에 흰 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작은 상자를 가지고 오자 고양이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 순간부터 어디선가 가늘게 가르랑거리며 우는 소리만 들렸다.

고양이는 어디론가 가고 없고 가쁜 숨소리만 메아리로 남았다.

숨소리를 찾아 수풀을 헤매다가 상자를 잃어버렸다.

상자를 잃어버리자 소리도 사라졌다.


내 핏줄을 타고 돌다가, 자려고 누우면 몸 한편에 고이는 고인의 목소리.

돌고 도는 건 지상뿐, 오늘도 하늘은 고여 있다,고 했다.

고인의 하늘? 당신의 하늘?

내가 되묻자 고인은 멋진 농담이라고 빙긋이 웃었다.

맞아, 우리의 하늘!

오늘도 하늘이 고여 있다, 하늘에 비가 고여 있다, 저 높은 웅덩이 속에 해가 고여 있고 달이 고여 있다, 바람도 새도, 고인도 발목이 잠겨 있다.


세계는 나와 고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별도 달도 없는 밤에는 하늘을 지상까지 끌어 덮고 잤다.

하늘을 눈 밑까지 끌어 덮고 하늘이 있던 자리를 올려다보면, 이불 한 채 없는 빈 방이 보인다.

두꺼운 마지막 밤하늘 한 채를 어깨에 짊어지고, 막 방문을 닫고 나가는 이가 바로, 나의 고인이다.


고인의 어깨에 고인 하늘 한 짐.

밤마다 내 어깨를 삐걱거리는 계단처럼 밟고, 내가 아는 모든 고인들이 검은 하늘을 한 채씩 이고 지고 내려오자, 하늘이 환해졌다.

우리가 아는 모든 고인들이 저마다 지고 온 하늘을 지구 한편에 부려놓을 때마다, 출렁이며 파도가 친다.

한순간도 멈춤 없이 매 순간 끝없이 파도가 친다.


잠든 나를 고인이 번쩍 들어 바다로 내던졌다.

한 장면의 암전도 없이 온통 고인의 꿈으로 가득했던 잠에서 깼는데, 아무런 기억이 없다.

이렇게 환하고 선명한 망각.


집어등처럼 환한 옷을 입은 고인이 작은 상자를 안고 해변으로 떠밀려왔다.

해변에는 고인은 없고, 고양이 울음소리만 가득 찬 빈 상자 하나만 있다.

나는 묵직한 상자를 들고 빈방으로 돌아갔다.



-《시로여는세상》 (2017년 겨울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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