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 송찬호

kiku929 2018. 6. 27. 13:00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송찬호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입안의 비린내를 헹궈내고

달이 솟아오르는 창가

그이 옆에 앉는다

 

이미 궁기는 감춰두었건만

손을 핥고

연신 등을 부벼대는

이 마음의 비린내를 어쩐다?

 

나는 처마 끝 달의 천장을 열고

맑게 씻은

접시 하나 꺼낸다

 

오늘 저녁엔 내어 줄 게

아무것도 없구나

여기 이 희고 둥근 것이나 핥아보렴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문학과지성사,2009) 중에서





*

송찬호 시인의 시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시이다.


이 시의 고양이는 실제하는 객관적 상관물로서의 고양이일 수도 있지만 자기 안의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은 미련 같은 것을 버리고도 

아직 남아 있는 마음의 비린내가 올라오는 때'이기도 할 것이다.


비린내라는 것은 형체가 사라져도 오래 남아 있는 것이므로.


그 비린 마음에 달의 천장에서 꺼낸 맑게 씻은 희고 둥근 접시를 내어주는 것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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