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샌드위치맨 / 신철규

kiku929 2018. 6. 26. 18:43



샌드위치맨

 



신철규

 



그는 무심과 무관심 사이에 있다

그는 좀 더 투명해져야만 한다

 

그는 처음에 모자와 마스크로 변장을 했지만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변장이란 것을 깨닫는다

그는 아침마다 거울을 보고 입술을 지운다

 

그는 앞뒤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는 말과 말 사이에 갇혀 걷는다

말의 고삐에 꿰어 말의 채찍질을 받으며

 

그는 납작해진다

그는 양면이 인쇄된 종이가 된다

사람들이 그를 밟고 간다

그의 온몸은 발자국투성이다

 

어제는 피켓을 든 한 무리의 시위대와 함께 걸었다

그는 목소리가 없어 추방당했다

 

그는 앞뒤로 걸친 간판을 벗고

그늘에 앉는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낀 그늘

그림자와 그림자가 겹쳐 더욱 짙어지는 그늘

 

사람들은 그가 그렇게 두툼한 줄 그제야 알아본다

 



-《문장웹진》(20138월호중에서





*

 샌드위치를 두둠하게 만드는 것은 양쪽의 식빵이다.

 내용물의 존재는 식빵에 의해서 확인되고 비로소 샌드위치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현대인들은 독자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어딘가에 소속하면서 존재하게 되고

 그 소속감은 개인의 고유성을 박탈시키는 방식으로 유지가 된다.


 어떤 철학자는 그래서 "직업은 천민으로 만든다"고 하였는데 그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흠... 키에르 케고르였던 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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