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회복이라는 말 / 이현승

kiku929 2018. 8. 2. 15:15



회복이라는 말



이현승



병실에서 시간은 느리게 간다.

풍경 발명가들은 하릴없이 창밖에나 눈을 준다.

그가 해시계 발명가로 업종을 바꿀 즈음

창밖 오후의 해가 나무의 그림자를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옮기는 것이 보인다.


회복 병실은 고요하다.

그래서 자꾸 수액 떨어지는 것에 눈을 주게 된다.

똑, 똑, 똑, 지워지는 소리들

잠든 사람의 가슴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눌린 페트병의 힘겨운 복원력 같은 것을 생각한다.

밟혀 찌부라진 페트병 같은 것을

신이 지그시 밟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목숨을 건 전투에서 생환한 사람들이 그렇듯

두려움과 고통과 절망적인 외로움이

살아남은 것의 대가로 주어진다.

비명이 빠져나간 자리를 들숨이 황급히 메우듯

얼마간 두려울 수 있음이 더 살 수 있음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회복이라는 말은 아직 아프고 더딘 말

풍경에 마땅한 소리를 매다는 하느님의 노동을 이해하는 시간

발에 채인 돌멩이가 하느님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



-《시인동네 2018년 7월호》 중에서





* 이현승 - 2002년 《문예중앙》등단. 시집『생활이라는 생각』,『친애하는 사물들』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