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삽화가들을 위하여

kiku929 2018. 8. 2. 17:30




삽화가들을 위하여




이설빈




모퉁이 붐비던 눈길 속으로

너무 오래 접혀 있던 빛이

스러졌다 이제는 밤보다 먼저

당신의 눈꺼풀을 끌어 덮는다

얼음이 물에 녹아내리며 더 차갑고

더 쓰라린 물결에 휘감기듯이

뜬눈으로 잠든 일술과 여린말을 섞으며

나는 그 꿈에 동반한다 접붙인 뿌리로서

깍지 낀 두 손에 아까와는 다른 어둠이 깃들어

푸르게 질린 몸 위에 새벽의 얼굴을 빚는다

뒤틀린 서사의 얼룩으로부터 나의 몫이란

당신의 절망의 깊이를 베고 잠드는 것

당신의 몫이란 당신을 호명하는 모든 꿈속에서

눈 뜨는 언덕일 것 기억될 미래로부터



-《릿터》12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