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사랑스러운 피오르드 / 정지우

kiku929 2018. 8. 11. 13:27




 사랑스러운 피오르드




 정지우




 거품은 가장 요란한 소리의 끝

 쏟아지는 폭포밑엔

 그 거품에 꺼질 수 있는 바닥이 있지


 나비 떼가 날아가고

 폭포가 떨어진 곳은 움푹 파여져 넓어졌지

 허공이 뒤집어서 만든 면적

 보글거리는 물의 거품은 소리의 관념들


 피오르드, 솟아오르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한 뼘 꺼질 수 있지 

곡벽은 한 없이 올라갈 수 있는 허공의 중심, 한 없이 무너질 수도

있는 균열, 그 틈으로 키가 자란 날도 깊이였다고


 사실, 폭포는 떨어진 것 같지만

 이륙하는 풍경이지

 화염을 일으키며 솟구치는 화산처럼

 겁먹은 말을 자르고 나오는 비명은

 한 쪽으로 몰리는 피의 멍


 어린 피오르드, 무수한 입을 벌리고 사라진 고도(苦道)의 울림을

찾아 고정된 문 앞에서 문을 두드리는 것, 때로는 방의 형태로 유빙

의 환월로 낭떠러지로 움푹


 한 곳에서 빠지지 않고도 그 공포를 짐작하는 곳은

 갑자기 발목을 잡을 수 있겠지만


 사랑스런 피오르드, 깊은 발목을 가져서 걸어가는 만큼 허공이

생겨나고 있구나



- 정지우 시집 『정원사를 바로 아세요』(민음사 2018,4)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