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발견
나희덕
잊은 듯이 한참 있다가
뚜껑을 열면
솥바닥에 자리잡은
절망의 크기만큼
온전한 한덩이의 누룽지가
안간힘으로 솟아올라 있다
구수한 누룽지 한조각 만드는 것이
요즘 나의 즐거움이다
누룽지를 들어내고
환한 솥바닥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
요즘 나의 발견이다
처치 곤란한 찬밥으로 누룽지 하나 만들어 내는 일은
얼마나 말끔하고 산뜻한 해결 방법인가.
내 마음의 더께하나 걷어내듯 누룽지 한 장 걷어내는 즐거움마저 덤이라면...
여행갈 때 가장 간편한 준비물은 누룽지와 김치이다.
누룽지만 있으면 쌀을 가져가서 밥을 할 필요도 없고
따로 반찬이 없어도 누룽지에 물 붓고 끓이면
아침 한끼정도는 간단히 때울 수가 있다.
아침 식사준비하느라 부엌에서 일하는 시간에
여행지에서의 아침을 만끽하는 편이 훨씬 행복한 일이니까.
여행의 가장 실감나는 순간은
잠자고 일어나 맨처음 창 밖을 내다보는 순간이 아닐까?
밤새 순간이동한 것처럼 다른 세상에 온 것같은 그 경이로운 기분에 사로잡힐 때,
그때 커피 한잔을 들고 주변을 산책하는 기분이란...
풀빛 세상의 바람결, 꽃내음, 다람쥐, 하늘, 흙길, 개울소리...^^
이 봄, 누룽지 만들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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