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이는 창문
송종규
젖은 창이 이루는 화폭 속으로 밤 열차가 지나간다 나는 종종 열차의 구석진 자리, 습하고 어두운 뒤 칸에 앉아있다 가지런히 손을 모아 보지만 호락호락하지 않는 세목들이, 절절하지도 않은 사건들이 유령처럼 창밖에 떠다닌다
한동안, 어떻게 세계가 확대되는지 하나의 이미지에 집중함으로 사물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몰두한 적이 있다
사무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은 잠들지 못한다는 사실과 죽을 만치 절실하다면 어떤 연애도 신파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어떤 결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밤 열차의 뒤 칸은 침묵으로 가득하고 비리고 쓰고 불운한 문장으로 채워져 있다 간이역도 보이지 않는 이곳에 드문드문 몇 사람이 턱을 괴고 앉아있다
이 행보는 무례하지만 지극한 것, 열차는 환상과 기억의 조합, 혹은 내 창에 비치던 너의 슬픈 손짓 같은 것이다
이윽고 열차는 멎고, 너라는 커다란 획에 당도할 수 있다면 침묵의 자물쇠로 잠겨있던 입들의 빗장을 풀릴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어두운 열차에 오르지 않아도 될 것이다
너는 내 안 가득 출렁이는 엄마 같아서, 눈 내리는 날의 창문 같아서
-≪시와세계≫ (2021년 겨울호) 중에서
*
이 작품은 메타시로서 송종규 시인의 시에 대한 사상이 녹아있다.
가지런히 손을 모아 보지만 호락호락하지 않는 세목들이, 절절하지도 않은 사건들이 유령처럼 창밖에 떠다닌다
죽을 만치 절실하다면 어떤 연애도 신파가 아니라는 사실
이 행보는 무례하지만 지극한 것, 열차는 환상과 기억의 조합, 혹은 내 창에 비치던 너의 슬픈 손짓 같은 것이다
너라는 커다란 획에 당도할 수 있다면 침묵의 자물쇠로 잠겨있던 입들의 빗장을 풀릴 것이다
너는 내 안 가득 출렁이는 엄마 같아서, 눈 내리는 날의 창문 같아서
여기서 '너'는 바로 '시'를 뜻한다.
그리고 시를 쓰는 행위는 그 어떤 것도 지극하고 절실한 것이라는 것,
도착하기 전까지 시는 쓰고 비리고 불운하고 간이역조차 없지만 열차가 멎는다면 어떠면 비로소 시라는 땅에 발을 디디게 될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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