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정류장에서 / 문태준

kiku929 2022. 12. 25. 13:59

 

정류장에서

 

 

문태준

 

 

언젠가 내가 이 자리에 두고 간 정류장

 

둥근 빗방울 속에 그득 괴어 있던 정류장

 

꽃피고 잎 지고 이틀 사흘 여름 겨울 내려서던 정류장

 

먼 데 가는 구름더미와 눈보라와 안개의 정류장

 

홀어머니 머리에 이고 있던 정류장

 

막버스가 통째로 싣고 간 정류장

 

 

 

 

- 문태준 산문집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 에 수록된 시

 

 

 

 

 

 

 

 

 

 

*

 

정류장이라는 장소는 문태준 시인의 시 속에서 자주 등장한다.

그 시인에게는 깊이 각인된 장소로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는 참 쉽다.

그런데 저런 시를 막상 쓰려면 정말 쓰기 어렵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익숙한 시어지만

그 언어의 조합이 결코 익숙하지 않다.

뻔하지도 않다.

 

그러나 읽고나면 마음 한 쪽 자리에 눈물이 고이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읽을수록 좋은 시

자꾸 읽게 되는 시

정류장에 서있게 되면 저절로 떠올리게 되는 시...

 

내가 시에 대해 회의를 느끼던 순간, 문태준 시인의 시집을 읽게 되었다.

어떤 시가 옳다 그르다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수용할 수 있는 시,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시, 더 나아가 내가 쓰고 싶은 시가

바로 문태준 시인의 시라는 것을 깨달았다.

 

좋은 시에는 쉬우면서 던져줄 수 있는 그 어떤 것이 있다.

그리고 그 시가 나를 통과할 때 미세하게 떨림을 준다면 나는 좋은시라고 생각한다.

어떤 시는 어떻게 이렇게 썼을까,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하고 감탄하게 하는 시도 있지만

그 감탄의 유효기간은 길지가 않다.

 

문태준 시인의  시 중에는 오래도록 남아 있는 시들이 꽤 많다.

이미지로, 신선한 언어로, 리듬으로...

그중 <유자>라는 시는 유자를 볼 때마다 떠오른다

쉬우면서도 아름다우면서도 깊은 통찰이 있지 않으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시,

 

다시 문태준 시인으로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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