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칼과 그림자 / 박이화

kiku929 2010. 1. 9. 11:12

 

 

    

 

 

 

  칼과 그림자* 

 

 

                               박이화


춤을 추다보면
음악이 눈으로 보이는 때가 있다
그야말로 온 몸으로 리듬을 타게 되는
내가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춤이 춤을 추는 그런 순간이 있다

어떤 노검객은
눈이 침침해지자 상대가 보이더라 했다
마음을 비우니 칼이 보이더라 했다
더 이상 칼을 뽑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때라 했다
싸우지 않으면 결코 질 일도 없으므로

생각생각 끝에
뱀이 뱀의 길을 아는 것이 아닌 것처럼

생각을 버리듯
온 몸에 힘을 빼고 나서야
비로소
춤이 보이고 칼이 보이는 경지,

사랑이 그랬다

보내고 나니
그제서야 오랜 부재로 남아 있는,
찌를 수도 안을 수도 없는 그림자처럼
이 텅 빈,이 슬픈 부재 아닌 부재로 남아 있는

그대가 그랬다


* 양선규 < 칼과 그림자> 소설 제목 인용 

 

 

 

 

이 세상 존재하는 것은 모두 그림자를 가진다.

형상과 그림자,

그 두가지가 함께일 때 온전한 하나라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우린 눈앞에 존재할 때는 형상만을 바라보고

그림자는 보지 못한다.

떠난 자리에서야 비로소 허물처럼 남아있는 그림자를 보는 것이다.

 

그 침묵의 공간,

목구멍으로 한 번 삼켜졌던 말들과

곳곳에 상흔으로 남은 주인없는 슬픈 그림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