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새 / 천상병

kiku929 2010. 1. 18. 20:44

    

 

 

    새


                         천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 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은 날
그 다음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 가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오늘 아침, 창밖의 하늘이 이처럼 맑을 수가 없다.

그래서 생각나는 시...

 

인생의 한 고비를 넘기고 지난 일을 그윽하게 회상할 때,

밤새 우레가 치는 소리에 잠들다 활짝 갠 아침에 눈을 뜰 때,

두통에 시달리다 진통제 한 알로 잔잔한 호수의 기분을 가질 때...

 

모든 소란과 잡념이 사라지고 난 뒤안길에서

홀로 부르는 노래도 이와 같으리.

 

몇번을 읊어보는데 눈물이 고인다.

 

알고, 모르고, 잊으면서

그리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었다고

아무런 일렁임 없이 말할 수 있게 되는 날

비로소 지난 일은 그리워만지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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