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 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은 날
그 다음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 가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오늘 아침, 창밖의 하늘이 이처럼 맑을 수가 없다.
그래서 생각나는 시...
인생의 한 고비를 넘기고 지난 일을 그윽하게 회상할 때,
밤새 우레가 치는 소리에 잠들다 활짝 갠 아침에 눈을 뜰 때,
두통에 시달리다 진통제 한 알로 잔잔한 호수의 기분을 가질 때...
모든 소란과 잡념이 사라지고 난 뒤안길에서
홀로 부르는 노래도 이와 같으리.
몇번을 읊어보는데 눈물이 고인다.
알고, 모르고, 잊으면서
그리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었다고
아무런 일렁임 없이 말할 수 있게 되는 날
비로소 지난 일은 그리워만지는 거라고.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이 다하다 / 김사인 (0) | 2010.01.18 |
---|---|
야누스의 나무들 / 이경임 (0) | 2010.01.18 |
가을 水力學 / 마종기 (0) | 2010.01.18 |
물소리를 듣다/ 나희덕 (0) | 2010.01.18 |
행운목 / 유홍준 (0) | 2010.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