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길이 다하다 / 김사인

kiku929 2010. 1. 18. 20:46

 

 

 

길이 다하다

 

 

                   김사인

 

 

풀 하나가 앞을 가로막는다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저 야윈 실핏줄들
빗방울 하나가 앞을 가로막는다

이미 저질러진 일들이여
완성된 실수여

아무리 애써도 남의 것만 같은
저 납빛의 두꺼운 하늘
잠시 사랑했던 이름들

이제 나에게 어떤 몸이 용납될 것인가
설움에 눌린 발바닥과 무릎뼈는
어느 달빛에 하얗게 마를 것인가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 창비. 2006

 

 

 

 

연이 다하여 떠나는 길,

그 길을 가로막는 건

사랑하는 이의 손이나 간절한 목소리가 아닌

단지 풀잎이나 물방울 같은 것들.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다 해도

그조차 완성된 나의 삶이라고,

끝내 가질 수 없었던 것들과

잠시 머물다 떠나간 사랑의 이름들을

홀로 부르며 가는 길.

 

구비구비 지나온 설움들은

달빛이나 별빛에 말리며

이미 길이 다한 길은 더는 돌아보지 않고

가벼이 떠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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