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다하다
김사인
풀 하나가 앞을 가로막는다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저 야윈 실핏줄들
빗방울 하나가 앞을 가로막는다
이미 저질러진 일들이여
완성된 실수여
아무리 애써도 남의 것만 같은
저 납빛의 두꺼운 하늘
잠시 사랑했던 이름들
이제 나에게 어떤 몸이 용납될 것인가
설움에 눌린 발바닥과 무릎뼈는
어느 달빛에 하얗게 마를 것인가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 창비. 2006
연이 다하여 떠나는 길,
그 길을 가로막는 건
사랑하는 이의 손이나 간절한 목소리가 아닌
단지 풀잎이나 물방울 같은 것들.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다 해도
그조차 완성된 나의 삶이라고,
끝내 가질 수 없었던 것들과
잠시 머물다 떠나간 사랑의 이름들을
홀로 부르며 가는 길.
구비구비 지나온 설움들은
달빛이나 별빛에 말리며
이미 길이 다한 길은 더는 돌아보지 않고
가벼이 떠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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