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일암 가는 길
공광규
바위와 바위가 기댄 암문을 거쳐야
암자에 오를 수 있다
암문은 좁거나 낮아서
몸집이 크거나 짐이 많은 사람은
암문을 통과할 수가 없다
꼿꼿한 허리도 굽혀야 하고
머리를 푹 수그려야 할 때도 있다
가끔은 무릎걸음도 해야 한다
이렇게 겸손하게 올라가도
바위가 막아서고 사철나무가 막마서서
갑자기 방향을 틀어야 한다
대웅전에서 해우소 가는 길도 그렇고
상관음전과 하관음전 가는 길도 그렇고
산식각 가는 길도 그렇다
이건 분명 부처님의 기획이다
오늘은 비가 와서 우산을 접고
비를 다 맞으며 암문을 통과했다
빗방울이 나를 지나 활엽수를 밟고 간다
바람이 불 때마다 온 산이 뒤척이며
파도 소리 법음을 내고 있다
*시집/ 말똥 한 덩이, 실천문학사
작년 연말에 어떤 분에게 겨울에 가면 좋을 여행지 하나 추천해 달라 했더니
'향일암'을 말해주었다.
일출이 멋지다고...
그런 얼마 후에 다른 지인에게 같은 물음을 했더니
역시 향일암을 추천해주셨다.
그리고는 2월 말쯤 가보라고 하신다.
자기가 여즉 가본 중에 향일암의 동백꽃이 가장 볼만 했다고...
그런 다음날 뉴스에서 향일암 화재 소식을 접했다.
어찌나 마음이 아릿하던지...
올 겨울이 다 가기 전에 향일암을 가 볼 수 있을까?
통꽃으로 툭툭 떨어지는 그 붉은 동백과 붉게 바다를 물들며 뜨는 일출...
생각만해도 이렇듯 가슴이 달아오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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