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과 그림자*
박이화
춤을 추다보면
음악이 눈으로 보이는 때가 있다
그야말로 온 몸으로 리듬을 타게 되는
내가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춤이 춤을 추는 그런 순간이 있다
어떤 노검객은
눈이 침침해지자 상대가 보이더라 했다
마음을 비우니 칼이 보이더라 했다
더 이상 칼을 뽑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때라 했다
싸우지 않으면 결코 질 일도 없으므로
생각생각 끝에
뱀이 뱀의 길을 아는 것이 아닌 것처럼
생각을 버리듯
온 몸에 힘을 빼고 나서야
비로소
춤이 보이고 칼이 보이는 경지,
사랑이 그랬다
보내고 나니
그제서야 오랜 부재로 남아 있는,
찌를 수도 안을 수도 없는 그림자처럼
이 텅 빈,이 슬픈 부재 아닌 부재로 남아 있는
그대가 그랬다
* 양선규 < 칼과 그림자> 소설 제목 인용
이 세상 존재하는 것은 모두 그림자를 가진다.
형상과 그림자,
그 두가지가 함께일 때 온전한 하나라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우린 눈앞에 존재할 때는 형상만을 바라보고
그림자는 보지 못한다.
떠난 자리에서야 비로소 허물처럼 남아있는 그림자를 보는 것이다.
그 침묵의 공간,
목구멍으로 한 번 삼켜졌던 말들과
곳곳에 상흔으로 남은 주인없는 슬픈 그림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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