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던가.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박사가 내게 말했다. 광고지에 (우리의 공책은 늘 신문 광고지의 뒷면이었다)
젓가락을 대고 연필로 직선을 그었다.
"그렇지 그게 직선이야. 자네는 직선의 정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군.그러나 한번 생각해보라구,
자네가 그은 직선에는 시작과 끝이 있어. 그렇다면 두 개의 점을 최단거리로 이은 선분인 셈이지.
원래 직선의 정의에는 끝이 없어. 한없이 뻗어 나가는 선이지. 하지만 한 장의 종이에 그리기에는 한계가 있고,
자네의 체력에도 한계가 있으니까, 일단 선분을 직선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아무리 날카로운 칼로
꼼꼼하게 끝을 갈아도, 연필심에는 굵기가 있어. 따라서 여기 있는 직선에는 너비가 있지.
즉 넓이가 생기는 거야.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실제 종이에 진정한 의미의 직선을 그리기란 불가능하다는 얘기야."
나는 연필 끝을 빤히 쳐다보았다.
" 그럼 진정한 직선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여기에밖에 없어."
박사는 자기 가슴에 손을 대었다. 허수에 대해 가르쳐줄 때 그랬던 것처럼.
"물질이나 자연현상, 또는 감정에 죄지우지되지 않는 영원한 진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
수학은 그 모습을 해명하고, 표현할 수 있어. 아무것도 그걸 방해할 수는 없지."
<박사가 사랑한 수식>중에서...
진실에 대해 이토록 적합하게 표현한 글이 있을까?
박사의 수학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어떤 대상을 이처럼 아름답게 빛날 수 있게 하는 그도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다.
이제 누군가 나에게 진실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진실은 직선같은 거예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직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 안에서는 존재하는 세계,
수학은 보이지 않는 그 세계를 명징하게 증명해보임으로 해서
진실이란 이름으로 실존의 마침표를 찍는다.
너무도 견고하고, 너무도 불변하게...
수학이 이렇게 아름다운 학문이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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