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푸른 만돌린이 있는 방 / 권현형

kiku929 2010. 5. 30. 22:26

 

     

 

 

 

푸른 만돌린이 있는 방

 

권현형 
  


나환자 마을이었다가 전쟁으로 불타버려 다시
들어섰다는 마을, 당신이 사는 그곳의 내력을
이야기할 때 문득 당신이 붉은 꽃잎으로 보였지요
나병을 앓고 있는 젊은 사내로 슬픈 전설의 후예로


나무 잎새들 당신의 머리카락 햇결처럼
물이랑 일던 초여름이었지요
꽃잎, 작디 작은 채송화들이 마당 가득 재잘거리고 있던
그 집, 그 방, 당신 방에는 작은 악기가 걸려 있었습니다
아무도 한 번도 켜본 적 없다는

흰 벽 위에 벙어리 만돌린이 내걸려 있던 방
당신이 좋아한다는 여자의 편지를 읽어주던
내가 없던
다른 여자가 있던, 햇살이 엉켜 어지럽던

그 골방처럼 모든 내력은 슬프지요
켤 수 없으므로 아름다운
푸른 만돌린에 대한 기억처럼

 

 

 

 

 

누구든 골방 하나 숨겨 놓고 살지요,

당신의 방에도 푸른 만돌린이 걸려 있습니까?

아직 한 번도 켜지 못한 채...

 

내가 없었던,

내가 없는,

당신만의 슬픈 내력의 방,

그래서 내게도 슬픈 방.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멀리 있어도 사랑이다 / 정윤천  (0) 2010.06.05
어제 / 박정대  (0) 2010.06.03
비단강 / 나태주  (0) 2010.05.28
우리 시대의 순수시 / 오규원  (0) 2010.05.25
걸림돌 / 공광규  (0) 2010.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