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있어도 사랑이다
정윤천
먼 곳에 두고 왔어도 사랑이다. 눈 앞에 당장 보이지 않아도 사랑이다. 어느 길 내내, 제 혼자서 부르며 왔던 그 노래가, 온전히 한 사람의 귓전에 가 닿기를 바랐다면, 무척은 쓸쓸했을지도 모를 외로운 열망같은 기원이 또한 사랑이다.
고개를 돌려, 눈길이 머물렀던 그 지점이 사랑이다. 빈 바닷가 곁을 지나치다가, 난데없이 파도가 일었거든 사랑이다. 높다란 물너울의 중심 쪽으로 제 눈길의 초점이 맺혔거든... 이 세상을 달려온 모든 시간의 결정만 같은 한 순간이여. 이런, 이런, 그렇게는 꼼짝없이 사랑이다.
오래전에 비롯되었을 시작의 도착이 바로 사랑이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휩쓸려, 손가락 빗질인양 쓸어 올려 보다가, 목을 꺽고 정지한 아득한 바라봄이 사랑이다.
사랑에는 한사코 긴한 냄새가 배어 있어서, 구름엔듯 실려오는 향취만으로도 얼마든지 사랑이다. 제 몸이 꿰어 있어서, 갈 수 없어도 사랑이다. 魂인들 그 쪽으로 향하는 그 아픔이 사랑이다. 등 너머에 있어도 사랑이다.
멀리 있어도 사랑이다.
이 세상에 숨길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면
그건 기침과 가난과 사랑이라 했다.
하지만 기침과 가난이 멀리로까지 퍼질 수 없는 것에 비해
사랑은 영혼의 종소리처럼 멀리멀리 퍼지는 힘이 있다.
눈 비 내리는 일도,
꽃에 향기가 있는 일도,
어둔 밤 별이, 달이 빛나는 일도,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일도 모두 사랑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따금 창에 손을 대고 창밖을 가만히 바라보는 일도
그리고 그 사람의 이름을 나직히 부르는 일도,
그리운 단 한 사람때문인지도 모른다.
멀리 있어도 사랑인 사랑...
그런 사랑 하나 가슴에 담아가기 위해
우리는 지상에 내려온 외로운 영혼의 새들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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