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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일만 나에게 / 박정만

kiku929 2010. 6. 14. 23:34

 

 

 

 

 

 

슬픈 일만 나에게


박정만



사랑이여, 슬픈 일만 내게 있어다오.
바람도 조금 불고
하얀 대추꽃도 맘대로 떨어져서
이제는 그리운 꽃바람으로 定處를 정해다오

세상에 무슨 수로
열매도 맺고 저승꽃으로 어우러져
서러운 한 세상을 건너다 볼 것인가.

오기로 살지 말자.
봄이 오면 봄이 오는 대로
가을이 오면 가을이 오는 대로
새 울고 꽃 피는 역사도 보고
한 겨울 新雪이 내리는 골목길도 보자.

참으로 두려웠다.
육신이 없는 마음으로 하늘도 보며
그 하늘을 믿었기로 山川도 보며
산빛깔 하나로 大國도 보았다.

빌어먹을, 꿈은 아직 살아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역에 자고
그 꿈자리마다 잠만 곤하여
녹두꽃으로 세월만 다 저물어 갔다.

사랑이여, 정작 슬픈 일만 내게 있어다오.

 

 

 

 

사랑은, 정작 슬픈 일만 있어달라 빌지 않아도

원초적으로 슬픈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사랑을 증명하는 건 슬픔밖에 없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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