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 (惡人)/ 요시다 슈이치,은행나무 ( 옮긴이/ 이영미)

kiku929 2010. 10. 15. 10:40

 

 

 

그 사람, 악인인거죠?

<랜드마크>, <첫사랑 온천>의 작가, 요시다 슈이치 신작소설. 일본 아사히신문에 연재된 작품으로, 인간 심연의 '악의'를 날카롭게 파헤친 감성 미스터리이다. 저자는 '선과 악', '강자와 약자'라고 하는 굵직한 테마를 선명한 묘사화 독특한 기법으로 그려내며, 하나의 살인사건으로 시작되는 인간 본성에 대한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후쿠오카와 사가를 연결하는 263번 국도의 미쓰세 고개에서 한 여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그녀는 살해되던 날 밤, 동료들에게 남자친구와 만난다고 거짓말을 하고 외출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녀가 만나기로 한 상대는 만남 사이트에서 알게 된 남자였다.

경찰은 그녀의 남자친구로 알려진 대학생 마스오 게이고가 며칠 전부터 행방불명인 것을 알아내고 지명수배를 내리는 한편, 그녀와 문자를 교환하던 인물들을 상대로 조사를 계속해나간다.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충격과 두려움에 위태로이 흔들리는 군상들의 충격적인 모습이 밝혀진다. <양장본>

수상 내역
♦ 일본 신문ㆍ잡지 서평담당자가 뽑은 2007 최고의 책 1위
♦ 2007년 제61회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수상작

 

 

 

 

요시다 슈이치

저자 |요시다 슈이치
제127회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 1968년 나가사키현에서 태어나 호세이대학 경영학부를 졸업했다. 1997년 데뷔작 《최후의 아들》로 등단해 제84회 문학계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 2002년 《퍼레이드》 로 제15회 야마모토슈고로 상을, 같은 해 《파크 라이프》로 제127회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면서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재능 있는 작가로 급부상했다.
그 외 작품으로는 아쿠타가와 상 후보작으로 선정된 《파편》 《돌풍》 《열대어》와 《캐러멜 팝콘》 《동경만경》 《랜드마크》 《첫사랑 온천》 등이 있다.
인간에 대한 관찰과 묘사에 탁월함을 발휘하고 있는 요시다 슈이치는 현재 일본과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대표적인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눈앞에 영상을 던져주는 듯한 독특하고도 섬세한 그의 소설은 그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형성하며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다음 책> 펌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은 이번으로 세 번째이다.

처음 딸 아이의 책꽂이에 있는 책을 꺼내 무심코 읽다가 점점 글에 매료되어 이 작가를 기억하게 되었다.

섬세하고 치밀하고 넘치지 않고 인간 내면을 핵심적으로 간파하는 능력있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일본 작품을 읽으면 일본 음식의 담백한 맛과 많이 일치한다는 느낌이 든다.

인간 관계의 구조들이 깔끔해서 끈적임이 없다.

그러면서 뭔가 미치도록 허무한, 그래서 누군가에게 계속 손짓을 향하지만 관계에선 별로 드러남이 없다.

마치 혼자가 아니면 안된다는 것을 경험하지 않아도 미리 다 알아버린 사람들처럼...

하지만 요시다 슈이치의 이 작품은 그의 다른 작품과는 좀 다른 구석이 느껴진다.

'뭔가 한 번쯤 박차고 나가 브레이크를 풀고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보기 드물게 기승전결이 뚜렷한 소설이다.

한국적?인 감성이랄까...

 

한 살인사건을 계기로 이 소설은 시작이 되지만 살인 사건보다는 그 살인 사건을 둘러싼 주변의 인물들의

심리적인 면에 초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겠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한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피라미드 꼭대기의 돌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밑변의 돌 한 개가 없어지는 거로구나 하는' -본문 439페이지에서-

 

그 돌 한 개가 없어지면 주변의 돌 부터 시작해서 움직이기 시작하고 또 그 돌을 둘러싼 돌들이 진동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얼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그 돌들은 없어진 자리를 메우고 다시 제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많고 다양하다.

그만큼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도 입장에 따라 모두 제각각인 것이다.

 

그런데 왜 이 소설은 '악인'이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선과 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고 싶었던 것일까?

 

살인자  '요이치'는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중 가장 순수한 영혼을 가진 남자인지 모른다.

매춘하는 여자에게 순정을 바치고 그녀와 살기 위해 아파트까지 얻는 남자.

어렸을 때 엄마에게 버림받고 조부모밑에서 살게 되지만 그 버림받은 상처조차 스스로 아물게 하며

용서를 한 남자.

그러면서 자신에게 늘 미안함과 죄책감을 갖고 있는 엄마에게 가끔씩 찾아가 돈을 뜯어내며 괴롭히는 남자이다.

그는 언젠가 몸을 파는 여자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원치 않는 돈을 뜯어내는 것도 괴로워."

"그럼 안 뜯어내면 되잖아"

"..... 그렇지만 양쪽 다 피해자가 되고 싶어 하니까"

엄마는 나중에 말한다. 난 그애에게 잘못을 저지른 만큼 대가를 충분히 치뤘어요,라고.

이런 그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자신의 죄가 더 무거워질 줄 알면서 사건을 왜곡시키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자기가 사랑한 여자로부터도 이해받지 못하는 남자가 되면서까지.

 

마지막 사랑했던 여자는 말한다.

'세상에서 하는 말이 맞는 거죠? 그 사람은 악인이었던 거죠?

그런 악인을, 저 혼자 들떠서 좋아했던 것뿐이죠. 네? 그런 거죠?'라고

이 질문과 더불어 소설은 마침표를 찍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작가가 던지고 싶었던 질문이었다면 좀 미흡하지 않았나 싶은 마음도 없지 않다.

이 책을 읽은 독자중 요이치를 악인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므로...

그보다는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그 모든 감정들,

즉 욕망의 추한 것 부터 가장 순수한 인간의 본성까지 이 책에는 그려져 있다.

그러기에 우린 인간에 대해 절망하다가도 또 희망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  희망은 신기루일 수도 있고 또 진실이 묻혀짐으로 해서 어둠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린 미쓰요에 대한 요이치의 사랑을 통해 내재되어 있는 악인의 굴레에서 좀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이 아름답게 긴 여운을 내게 남겨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악인'이라는 제목과 내용이 좀 핀트가 어긋난 사진같았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