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시계 / 앤 타일러 (장영희 옮김, 문예 출판사)

kiku929 2010. 10. 5. 23:55

 

 

 

 

지은이 앤 타일러(Anne Tyler)
1941년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태어난 앤 타일러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미국 문단의 대표적 여류 작가다. 22세 때 『아침이 오면If Morning Ever Comes』(1964)을 발표한 이래 이제까지 10여 편의 장편과 50여 편의 단편, 수많은 서평을 발표하여 작가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으며, 특히 1985년 미국서적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 『우연한 여행자The accidental tourist』가 영화화되고, 1989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종이시계』(원제, Breathing Lessons)는 장기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며 독자들 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출판될 때마다 빠짐없이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앤 타일러의 작품은 사물을 관찰하는 예리하면서도 따뜻한 눈, 인간성에 대한 신선한 통찰력, 날카로운 유머 감각, 특히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인물 묘사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현재 정신과 의사인 남편과 두 딸과 함께 볼티모어에서 사는 그녀는 철저하게 유명세를 거부하지만 미국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끊임없이 인기를 끌고 있다. 작품으로는 Dinner at the Homesick Restaurant, Back When We Were Grownups, A Patchwork Planet, Ladder of Years, Morgan's Passing 등이 있다.

 

<다음 책> 펌

 

 

 

 

앤 타일러의 '우연한 여행자'다음으로 읽은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 매기 모런은 48세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노인 요양원에서 간호 보조원으로 일하는 여성이다.

그녀는 액자틀을 만드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남편과 자기 앞길도 제대로 못하는 아들,

그리고 공부를 잘 하여 장학금으로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는 딸을 둔 평범한 주부이다.

 

인생에는 어떤 시기마다 필연적으로 거치게 되는 과업이 있다고 한다.

어린이는 어린이라는 시기에 맞는 과업, 청춘에는 또 그에 걸맞는 과업, 그리고 중년에는 쇠퇴해가는 고갯길에서

삶을 돌아보는 과업이 주어지는 것이다.

아마도 이 책이 나에게 공감을 주었다면 그것은 주인공이 나와 같은 또래로,

나와 비슷한 인생의 지점에서 비슷한 과업을 거치고 있는 중이라는 입장의 일치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무덤덤해지는 부부, 성장하여 부모로부터 독립하길 원하면서도 생활에서는 여전히 불완전한 아이들,

그러면서 그동안 살아오느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 텅 비어버린 자신의 세계로 돌아오면서

느끼게 되는 상실감, 허무함 등등...

 

이 책은 하루의 이야기이다.

그러면서도 500페이지에 달하는 제법 두터운 책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숲 속을 거니는 조용함이 아니라 내가 어느 시장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 착각하리만큼

수많은 말들이 속사포처럼 쏟아져나온다.

어느때는 내 안이 너무 시끄러워 일부러 쉬어주어야 했을 정도이다.

그것은 이 책이 그만큼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라는 의미라고 바꿔말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소설의 단계인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뭐 이런 식의 내용도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잔물결이 쉴 새 없이 흘러가는 것처럼, 그리고 그 끝이 어딘지도 모르는 강물처럼

소설은 그렇게 시작하여 그렇게 끝을 맺는다.

삶이란 내가 어떤 일을 경험하며 후회 했다고 해서, 또 깨달았다고 해서 그것이 되풀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삶은 관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부모와 그런 되풀이는 순환의 고리처럼

끝없이 굴러만 가는 것이다.

 

<종이시계>의 원제는 Breathing Lessons (숨쉬기 연습)이지만 한국에서의 그런 제목은 무슨 건강에 관한 책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어 <종이 시계>라는 제목을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종이시계는 소설의 내용에서 여자 주인공이 결혼하여 처음 결혼 기념일에 남편에게 만들어주려다가

끝내 선물하지 못한 시계이기도 하다.

 

" 난 그럴 버렸죠...... 어쩐지 너무 어설프게 만들어진, 임시변통으로 마련한 물건 같았어요.

난 그것이 무슨 상징 같은 것, 말하자면 우리의 결혼의 상징 같은 것일까 봐 두려웠죠.

우리 스스로가 임시로 만들어진 물건들이 아닌가 해서요."라면서...

 

개인적으로는 <종이 시계>라는 제목이 훨씬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같은 수를 끝없이 반복하며 둥글게 움직이는 시계라는 속성, 

그러면서 그 시계가 불완전하고 언제든 찢어지기 쉬운 종이위에서 돌아간다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기도 하며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반복되는 일상과 끝이 없는 결말과 잘 일치하기 때문이다.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짜증나리만큼 집요한 주인공의 성격과 잔소리가 나에게도 전염이 되는 것 같아

편치가 않았는데 막상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나니 가슴에 주인공의 목소리가 잔음처럼 오래도록 들려오는 느낌이다.

이런 것이 사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나의 목소리가 변조된 것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