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이 쓴 에세이를 좋아하게 된 것은 아마도 천양희 시인이 쓴 <시의 숲을 거닐다>를 읽고부터일 것이다.
그리고 허연의 <그 남자의 비블리오필리>도 좋은 느낌으로 읽었다.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오로지 시인 최영미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냥 별 생각없이, 아무런 기대없이 읽었다면 물론 이 책은 지금보다는 훨씬 좋은 느낌으로 내게 전해졌을 것이다.
최영미라는 작가가 갖추고 있는 기본적인 역량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느낀다.
우선은 책의 제목과 내용이 겉돈다는 느낌이다.
독자는 맨처음 책의 제목을 통해 작가를 만나게 된다.
책의 제목은 작가가 그 책 속에 어떤 이야기를 통해서, 무엇을 담고 싶어 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므로.
그리고 우린 책장을 펼치게 되는 그 출발점에서 작가가 이어준 긴 선로를 타고 드디어 도착점에 이르렀을 때
왜 책의 제목을 그렇게 정했는지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라는 이 제목은 우리에게 전해주는 작가의 메세지로는
그 내용이 어딘지 허술하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땐 미술학을 전공한 작가답게 세계 유명한 박물관을 여행하며 그림에 대한 작가의 감상을 쓴
여행 에세이인가보다 싶었는데 그것도 첫 부분에서만 잠깐이다.
그냥 하나 하나의 수필들을 짜집기한 글 중간의 어느부분에선가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라는 주제의 작가의
짦은 멘트가 제목과의 연관성을 살려주려 했을뿐이다.
좀더 치밀하게 주제의 일관성을 갖고 엮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수필은 글쓴이의 개인적인 이야기나 생각, 사고방식, 삶의 철학이 고스란히 배여있는 장르이다.
내가 수필을 좋아하는 이유 역시 작가의 인간적인 냄새가 가장 짙게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글의 유려함보다는 진솔하고 순수하고 겸손하면서 따뜻한 인간애가 담긴 글을 좋아한다.
물론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성향이고 견해일 뿐이다.
그러기에 이 책이 그런 나와의 성향과 같지 않다고 해서 폄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나와는 코드가 잘 맞지 않는 책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그럼에도 화가나 그림에 대한 그녀의 설명이 담긴 감상은 좋았다.
박물관과 여행, 그리고 그림과 더불어 화가의 삶... 이런 주제로 조근조근, 차근차근 우리에게 전해오는
에세이였다면 더 멋졌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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