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새를 위한 첼로 조곡
함기석
눈이 내린다
하얀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니는 공중에서
아름답고 슬픈 선율이 들려온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귀를 세운다
회화나무 가지에 슬레이트집 둥지가 걸려 있다
창가에서 새가 첼로를 켜고 있다
그는 나무를 올라 슬레이트집 거실로 들어간다
창가에서 꽃들이 어두운 기침을 한다
파란 깃털의 새 한 마리 악기를 내려놓고
홀로 술을 마시고 있다 겨울 내내 지나온 허공의 길
길의 상처와 고독을 마시고 있다
창밖으로 반짝반짝 눈이 내린다
눈송이 사이로 등줄기가 아름다운 바람이 지나간다
그가 다가가 첼로를 만지는데
벽의 영정사진 속에서 어린 새가 환하게 웃는다
오빠! 새가 부른다
그는 깜짝 놀라 뒤돌아본다 그 순간
가지에 수북이 쌓여있던 눈이 얼굴을 덮친다
그는 정신이 번쩍 들어 주변을 둘러본다
어린 새도 술을 마시던 새도 보이지 않고
눈보라 속으로 사라지는 유년의 슬레이트집이 보인다
눈 덮인 회화나무 빈 가지 끝에
죽은 새의 눈을 닮은 열매 하나 얼어붙어 있다
그는 열매를 따 입에 넣고 나무를 내려온다
바람이 분다 툭!
가지 끝에 달린 마지막 이파리가 발아래로 떨어지고
그는 쓸쓸히 회화나무 흰 그늘을 떠난다
그가 혀로 언 열매를 녹이며 레테의 겨울마을을 도는 동안
하늘에서 어둠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어디선가 아름다운 첼로 선율이 계속 들려온다
*계간 <딩하돌하> 2009년 봄호
이 시를 읽다보면 글은 점점 멀어지고 대신 어떤 영상이 다가오게 된다.
눈이 쏟아지는 겨울 밤,
꿈결처럼 다른 세상으로 와버린 것 같을 때
하나 둘 성냥불 켜지듯 환하게 피어나는 그리운 얼굴들...
눈은 그리운 마음들이 저 세상 어딘가에 쌓여 있다가 수문이 열리듯
지상으로 눈이 되어 내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처럼 홀로 있는 밤, 어딘가에서 노래하고 있을 새를 생각한다.
나인 듯도 한 한 마리 겨울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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