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사랑에 부쳐 / 김나영

kiku929 2011. 1. 31. 20:51

 

 

      

 

 

 

        사랑에 부쳐 

 

 

김나영

 

 

 

산도둑 같은 사내와 한 번 타오르지 못하고

손가락이 긴 사내와 한 번 뒤섞이지도 못하고

물불가리는 나이에 도착하고 말았습니다

모르는 척 나를 눈감아줬으면 싶던 계절이

맡겨놓은 돈 찾으러 오듯이 꼬박꼬박 찾아와

머리에 푸른 물만 잔뜩 들었습니다

이리 갸웃 저리 갸웃 머리만 쓰고 살다가

마음을 놓치고 사랑을 놓치고 나이를 놓치고

내 꾀에 내가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암만 생각해도 이번 생은 패(覇)를 잘못 썼습니다

 


*시집 <수작>

 

 

 

 

 

 

시인의 나이도 나와 비슷할까?

행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걸 보면.

 

그런데 어쩌나,

이제 물불은 가릴만 한 나이건만

해마다 꽃은 더욱 붉게 피어나니,

 

아직까지도 나에게 남은 패가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