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부쳐
김나영
산도둑 같은 사내와 한 번 타오르지 못하고
손가락이 긴 사내와 한 번 뒤섞이지도 못하고
물불가리는 나이에 도착하고 말았습니다
모르는 척 나를 눈감아줬으면 싶던 계절이
맡겨놓은 돈 찾으러 오듯이 꼬박꼬박 찾아와
머리에 푸른 물만 잔뜩 들었습니다
이리 갸웃 저리 갸웃 머리만 쓰고 살다가
마음을 놓치고 사랑을 놓치고 나이를 놓치고
내 꾀에 내가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암만 생각해도 이번 생은 패(覇)를 잘못 썼습니다
*시집 <수작>
시인의 나이도 나와 비슷할까?
행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걸 보면.
그런데 어쩌나,
이제 물불은 가릴만 한 나이건만
해마다 꽃은 더욱 붉게 피어나니,
아직까지도 나에게 남은 패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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