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두둑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일 뿐
이제니
그래봤자 결국 후두둑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일 뿐. 오늘부터 나는 반성하지 않을 테다. 오
늘부터 나는 반성을 반성하지 않을 테다. 그러나 너의 수첩은 얇아질 대로 얇아진 채로 스프
링만 튀어오를 태세. 나는 그래요. 쓰지 않고는 반성할 수 없어요. 반성은 우물의 역사만큼
이나 오래된 너의 습관. 너는 입을 다문다. 너는 지친다. 지칠 만도 하다.
우리의 잘못은 서로의 이름을 대문자로 착각한 것일 뿐. 네가 울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
본다면 나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겠다고 결심한다. 네가 없어지거나 내가 없어지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 그러나 너는 등을 보인 채 창문 위에 뜻 모를 글자만 쓴다. 당연히 글자는 보
이지 않는다. 가느다란 입김이라도 새어나오는 겨울이라면 의도한 대로 너는 네 존재의 고
독을 타인에게 들킬 수도 있었을 텐데.
대체 언제부터 겨울이란 말이냐. 겨울이 오긴 오는 것이냐. 분통을 터뜨리는 척 나는 나지
막이 중얼거리고 중얼거린다. 너는 등을 보인 채 여전히 어깨를 들석인다. 창문 위의 글자
는 씌어지는 동시에 지워진다. 안녕 잘 가요. 안녕 잘 가요. 나도 그래요. 우리의 안녕은 이
토록 다르거든요. 너는 들썩인다 들썩인다. 어깨를 들썩인다.
헤어질 때 더 다정한 쪽이 덜 사랑한 사람이다. 그 사실을 잘 알기에 나는 더 다정한 척을,
척을 척을 했다. 더 다정한 척을 세 번도 넘게 했다. 안녕 잘 가요. 안녕 잘 가요. 그 이상은
말할 수 없는 말들일 뿐. 그래봤자 결국 후두둑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일 뿐.
*시집<아마도 아프리카> 창비, 2010.
예전에는 몰랐다.
만남과 헤어짐은 모두 시절인연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때가 되면 꽃이 피고 때가 되면 꽃이 지는 이치일 뿐이라는 것을...
하지만 만남이나 이별은 모두 혼자는 할 수 없는 일이며 불행하게도
상대와 내가 항상 그 시점이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어느 한 쪽이 상처를 입는 것은 또한 어쩔 수 없는 결과이다.
우린 만날 때보다 헤어질 때 더 많은 말을 하게 된다.
마음이 아직 남아 있는 사람은 해야할 말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이란 마음이 떠나면 그 효용성도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마음이 사라진 그 자리에 대고 아무리 말을 한다고 한들 그 소리가 어디에 가 닿을 것인가.
한낱 후두둑 떨어지는 나뭇잎 소리일 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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