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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뿌리에게 / 이승희

kiku929 2010. 1. 9. 09:20

 

 

 

 

                  수련

                                     -뿌리에게

 

                                        이승희

 

 

 

당신을 수면 아래 묻고

당신의 이름은 물속의 흙에 묻었습니다.

 

나는 물 위에 떠서

가만히 당신을 생각합니다.

여전히 한 몸인 당신의

이야기가 오늘 하루의 양식입니다.

난 여전히 당신을 읽고

당신은 여전히 나를 읽습니다.

때로 당신은 자꾸만 나를 밀어 올리려 하지만

난 결코 이 물을 떠나지 못합니다.

저 공중으로 가버릴 수가 없습니다.

수면에 닿은 곳, 여기까지가

내가 당신을 버릴 수 있는 거리입니다.

난 당신으로 인해 꽃 피지만 당신은 나로 인해

당신의 이름을 말할 수 있습니다.

밤이 되어

달빛을 타고 당신에게 내려가

물 속의 흰 방에서 잠들고 싶습니다.

이제 그만 이 꽃잎을 거두어

송이째 당신에게 지고 싶어집니다.

물속

물의 알갱이들을 두드려 밟으며

달빛이 그러하듯

오랫동안

아주 느린

세월의 무게로

가라앉고 싶습니다.

다시는 떠오르지 않고

다시는 저 공중을 그리워하지 않으며

다시는 꽃 피우지 않으며

지고 싶습니다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 창비.2006.

 

 

 

 

뿌리와 잎 사이의 거리,

그 거리를 영원히 채울 수 없는 사랑은 운명이라고 말해야할까...

 

연잎이 공중을 그리워하지 않는 일,

나무가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일은

사람이 사랑을 그리워하지 않는 일과 같은 말.

 

아무 것도 그리워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건 生이 아니라는 말.

 

생이란 건

끊임없이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누군가가 그리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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