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저무는 풍경 / 박이화

kiku929 2010. 1. 9. 09:14

 

 

 

      저무는 풍경

 

 

                               박이화


돌아오지 않는
강물을 기다리는 다리는
차라리
무너지고 싶을 거다
무너져선 안 되는 것들이
기실은 더 무너지고 싶은
이 기막힌 역설로
나는 그대에게 기울고
강물은 또 그렇게 범람했나보다
허나, 나도 다리도
끝내 무너질 수 없는 것은
내 그리움의 하중이
견딜만 해서가 아니라
강물의 수위가 높지 않아서가 아니라
결국, 무너질 수 없는 것들의
그 오랜 기다림이 배경일 때
그대도 강물도
저무는 풍경에서
더 멀리
더 고요히 아름답기 때문이다

 

 

 

 

저무는 풍경에서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하여

사라지는 것에 대해

손 내밀지 못하고

침묵해야 할 때가 점점 많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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