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아픈 후회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슴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高熱)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나의 희생, 나의 자기 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 주는 바람뿐
*시집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시인의 뼈아픈 독백이
왜 많은 이들에게 그토록 공감을 주는 것일까?
누군가를 끊임없이 사랑하며 살아온 인생이었다고 해도
돌아보면 아무도 남지 않았음을,
자신의 안에 진정 그 누구도 들이지 못했음을 인정하게 되는 한 순간을,
그 처절한 절망을 느껴보지 않은 이가 어딨을까.
사랑은 자신을 제단위에 올려 놓지 않으면 안되는,
어쩌면 신을 만나는 일과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
시는 언제나 미완의 상태이다.
그러기에 시인의 발표시라고 해도 시집에 따라, 문학집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시 역시 몇 번의 수정이 있었던 걸로 안다.
그 중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시로 골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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