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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혼자 떠나라 /박노해

kiku929 2011. 4. 12. 20:33

 

 

         

 

 

 

여행은 혼자 떠나라

 

 

박노해

 

 

여행을 떠날 땐 혼자 떠나라

사람들 속에서 문득 내가 사라질 때

난무하는 말들 속에서 말을 잃어 갈 때

달려가도 멈춰 서도 앞이 안 보일 때

그대 혼자서 여행을 떠나라

 

존재감이 사라질까 두려운가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충분한 존재감이다

 

여행을 떠날 땐 혼자 떠나라

함께 가도 혼자 떠나라

 

그러나 돌아올 땐 둘이 손잡고 오라

낯선 길에서 기다려 온 또 다른 나를 만나

돌아올 땐 둘이서 손잡고 오라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느린 걸음

 

 

<좋은 생각> 4월호에서 옮겨옴

 

 

 

 

 

나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나에게 여행이란 널널한 여유로움, 마음의 움직임을 따라서 가는 길, 날개를 활짝 펴는 기분,

나와의 몰입, 자연과 더불어 숨쉬는 일... 뭐,이런 것쯤이 아닐까싶다.

사실 여행이란 말도 거창하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나에겐 '여행을 다녀온다'라고 말할만큼의 여행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한달에 한 두번 친정에 가는 길이나 고향의 시골길을 드라이브 삼아 둘러보는 일,

아니면 우리집 근처에서 한시간 남짓의 거리를 다녀오는 일 그 모두를 나는 여행이라 부르니까.

하지만 난 정말 그때마다 여행하는 기분으로 간다.

그래서 내 차의 트렁크엔 돗자리와 모포 우산 그리고 양산들이 들어 있고

길을 나설 때마다 따끈한 보온병에 커피정도는 끓여서 간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은 단연 돗자리.

어느 장소에든 돗자리를 펴기만 하면 그 넓이만큼은 이내 나의 공간이 되어버리는 그 마술같은 일이

난 너무도 즐겁고 재밌다.

마치 아무것도 없던 장소에 나만의 방이 짠~하고 나타나는 것처럼...^^

그리고 홀로 휴게실에 들러 자판기의 커피를 빼먹으며 하늘을 올려다 보는 기분도 좋고

차 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이런 저런 상념에 빠지는 것도 좋다.

그런 시간이 내겐 휴식이고 일탈이고 일상의 작은 반란이다.

 

나에게 여행은 이런 의미여서 여러사람들과 함께 가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은 나를 여행하는 장소와 그 시간에 조용히 발을 들여놓게 하는 일이다.

온전히 나의 마음에 집중하며 음미하는 일, 이것이 나에게 여행이라는 기분인데반해

곁에 사람들이 있으면 그런 시간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나와 사람들만이 그 장소에 덩그러니 놓여지고만다.

그때부터는 내가 마음써야 하는 것은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혼자하는 여행이 아무리 좋아도 그역시 자유롭지 않은 면이 없지는 않아서

곁에 있어도 전혀 의식하며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되는 공감이 가는 사람과 함께하는 여행이 가장 좋은 것 같다.

그리고 함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공범자는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 시켜준다.

나의 즐거움 곱하기 둘이 되기 때문이다.

 

곧 있으면 이곳에도 벚꽃이 환한 모습으로 도착하게 된다.

            내가 일년동안 쓰지 않고 아껴두었던 카드사의 주유 포인트를 사용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담주부터는 딸과 친구와 동서와의 나들이가 연이어 잡혀있다.

아, 이 기다림이 얼마나 행복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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