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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을 때... 김훈 에세이 중

kiku929 2010. 1. 9. 18:25

 

                       

 

 

 

 

내가 모든 시를 다 들여다본다 하더라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시행은 겨우 몇 줄이다.

시를 읽을 때, 내 마음은 시행을 이루는 언어와 그 언어 너머의 실체 사이에서 표류한다.

나는 언어를 버리고 시적 실체 쪽으로 건너가려 하지만, 언어는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언어는 버림받는 애인처럼, 징징거리면서 끝까지 나를 따라온다.

언어의 징검다리를 딛고 서 있을 때, 징검다리의 저편이 보일 듯도 하지만 이 징검다리를 딛지 않고서는

나는 저편으로 건너갈 수 없다.

나에게 간절한 것은 언어가 아니라 징검다리 건너편에 있는 실체이지만, 나는 늘 이 징검다리 위에 있다.

 

 

김훈 에세이 <바다의 기별> 중 '시간의 무늬' 에서 p62

 

 

 

내가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벽과 닮았다.

건널 듯, 닿을 듯 하지만 끝내 난 어정쩡하게 징검다리 위에서 언어에 집착하고 있는 나를 본다.

그걸 극복할 수 있을때 진정 시를 이해할 수 있으련만...

 

옷감의 재질이 무어냐에 따라 디자인이 달라지듯

어쩌면 시를 느낄 수있는 마음의 바탕은 다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의 바탕은 시를 쓰거나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이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씁쓸한 생각이 들 때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