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물푸레나무 / 김태정

kiku929 2012. 3. 15. 08:26

 

 

 

 

 

 

물푸레나무

 

 

김태정 



물푸레나무는
물에 담근 가지가
그 물, 파르스름하게 물들인다고 해서
물푸레나무라지요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는 건지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는 건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어스름
어쩌면 물푸레나무는 저 푸른 어스름을
닮았을지 몰라 나이 마흔이 되도록
부끄럽게도 아직 한번도 본 적 없는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은 어디서 오는 건지
물속에서 물이 오른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빌깔이 보고 싶습니다
풀푸레나무빛이 스며든 물
그 파르스름한 빛깔이 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빛깔일 것만 같고
또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갖지 못할 빛깔일 것만 같아
어쩌면 나에겐
아주 슬픈 빛깔일지도 모르겠지만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면 잔잔히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며 찬찬히
가난한 연인들이
서로에게 밥을 덜어주듯 다정히
체하지 않게 등도 다독거려주면서
묵언정진하듯 물빛에 스며든 물푸레나무
그들의 사랑이 부럽습니다.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창비 2004

 

 

 

 

'물푸레'라는 말로도 아름다운 시어가 된다.

나무의 푸른 빛깔이 물에 번지듯 사랑도 그와 같다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이제는 잘 모르겠다.

 

사랑이란 말도 이젠 저 밤하늘의 별같다는 생각이 든다.

존재는 하지만 늘 바라보며 꿈을 꾸어야 하는 것...

 

사랑은 내 손안에 가질 수 없는 별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내가 세상을 알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아직도 모른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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