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김춘미 옮김)

kiku929 2012. 5. 15. 01:08

 

 

 

 

 

<책 소개>

 

인간의 나약함을 탁월하게 묘사하는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새롭게 읽는다. 순수하고 여린 심성의 젊은이가 인간 사회의 위선과 잔혹성을 견디지 못하고 파멸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로,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못한 채 인간 실격자로 전락한 주인공의 내면을 치밀한 심리묘사로 기록하였다. 다자이 작품 속의 타락과 자기파괴적 언행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후 공황상태에 빠진 일본 젊은이들의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다자이 작품은 기성세대의 가치관 및 윤리관, 도덕관이 패전과 함께 붕괴되면서 기존 사회에 속한 모든 것을 거부하고 새로이 시작하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을 담고 있다. 어떻게든 사회에 융화하고자 애쓰고, 인간에 대한 구애를 시도하던 주인공이 결국 모든 것에 배반당하고 인간 실격자가 되어가는 패배의 기록인 이 작품은 그런 뜻에서 현대 사회에 대한 예리한 고발 문학이라 할 수 있다.

함께 실린 작품, 「직소」는 ‘나약한 인간으로서의 유다’라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유다가 예수를 고발하는 자리에서 늘어놓는 이야기를 마치 독자가 현장에서 함께 듣고 있는 것처럼 서술한 작품으로, 예수를 흠모하고 사랑했지만 그 사랑이 거부당한 데 대한 분노와 반발심으로 예수를 팔아넘기게 되는 유다의 갈등과 번민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YES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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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나약하고 순수한 영혼이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서서히 파멸해 가는 과정을 어쩌면 이토록 선명하게 짚어 낼 수 있을까.

안개속에 가려진 실체, 희미하게 느낄 수는 있지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인간 내면의 갖가지 모습들을

이처럼 확연하게 드러내보인 소설을 읽은 기억이 없다.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으로는 <사양>을 읽은 것이 전부였던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명성이 과장된 것이 아니었음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요조'는 작가의 페르소나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요조는 이름 있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도련님이라 불리우며 집안에서 귀하게 자라났다.

겉으로보기엔 명랑하고 쾌활하고 익살스러운 장난꾸러기였지만, 두뇌 또한 명석하여 성적은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까지 늘 상위권이었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너무도 나약하고 순수하여 사람에게 화나게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거부의 의사표시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실은 사람에 대해 희망을 찾기를 누구보다 원했으면서도 원하면 원한만큼 배신을 당해야만 했던 그였던 것이다.

요조가 일찌감치 사람에 대한 혐오를 갖고 마음의 문을 닫은 것은 스스로 상처받기를 극도로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상처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미리

절망하고 그 절망의 현실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납득시키고자 한다.

희망을 갖는다는 일은 곧 두려움이라는 말과 같은 동의어가 되기 때문이다.

겉은 짐짓 다른 얼굴로 친절하게 사람들을 대하지만, 자신의 진정한 친구도 가족도 없는 황량한 들판의 한 마리 작은 새처럼

그에게 세상은 늘 춥고 외로운 곳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신은 점점 세상으로부터 기생하며 살아가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열등감과 자책과 죄의식속에서 점점 황폐해갈 뿐이다.

야비하고 졸렬하고 치사한 인간 본성을 별 반성없이 받아들이며 사는 인간들은 어떻게든 이 세상과 화해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요조와 같이 옳고 깨끗하고 순수한 것만이 실로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세상과 타협한다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가 살아갈 수 있는 길은 그런 자신에 대한 자학이라는 길밖에 달리 없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세상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어쩌면 알러지 환자들에게 알러지의 원인이 되는 소량의 균을 일정한 기간  계속 투여해주면

그 알러지 반응에 둔해지게 된다는 이치처럼 ,수치나 비열함같은 감정들을 조금씩 주사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대화하듯이 술술 풀어내는 글 솜씨하며, 수기 형식을 빌어 온 한 개인의 자기 고백을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이야기 하고 있는

이 책은, 그의 책 대부분이 그렇듯이 다자이 자신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다.

자신을 모티브로 삼는다는 것은  끊임없는 자기 반성과 자기 부인을 통한 지독한 자기 통찰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의 작품이 비록 소설이라는 허구의 형식을 빌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며 작가의 시대의 어둠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방황하며 고뇌하면서 이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구원받을 수 없는 좌절과 패배의식을 우리가 함께 느낄 수 밖에 없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시대의 변혁기에는 반드시 정치적 시행착오가 있고, 개인으로 보면 가치관의 혼란이 찾아온다.

그러나 아무도 저항하는 이 없이 순순히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사회라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적어도 지식인은 그에 대해 깊이 고민해봐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시대적 책임을 느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자이 오사무가 지금 일본인들에게 새롭게 추앙받는 이유중 하나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덧붙여...

 

 

책 마지막 장에 이 책의 번역자가 쓴 <작품 해설> 또한 작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김춘미라는 이름은 내겐 익숙한 이름으로 우리 학교의 교수님이셨다.

그 분께 수업을 받았던 나는 그때의 강단에 서 계신 교수님의 모습을 회상하며 잠시 추억에 잠기기도 하였다.

교수님의 작품해설은 '혹시 다자이 오사무에 관한 논문을 쓰신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작가에 대해 아주 많이, 깊이

연구하고 쓴 글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이 책은 나에게 일본 고전에 대한 놀라움과 관심을 갖게 해준 책으로 기억이 될 것이다. 

 

 

 

 

저자소개

 

다자이 오사무

|||다자이는 일본 동북 지방의 아오모리 현(靑森縣) 기타쓰가루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로, 아버지는 그 지방의 대지주이며 귀족원(중의원) 의원이기도 하였다. 8남매 중의 막내로 형제들에 대하여 항상 열등 의식을 지니고 부모의 사랑도 모른 채로 유모의 손에서 성장하였다.

다자이는 고등학교 시절 동인 잡지에 아버지의 방탕한 생활과 위선을 폭로한 『무한 나락』을 발표했으며, 3학년 때인 1929년에는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첫 번째 자살 미수 사건을 벌였다. 1930년 도쿄대학 불문과에 입학한 다자이는 이부세 마스지를 만나, 이후로 사제 관계를 맺기에 이르렀다. 같은 해, 게이샤 출신의 오야마 하쓰요(小山初代)가 도쿄로 찾아와,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의 관계를 인정받게 되나, 그 때문에 다자이는 고향의 가족들로부터 분가 제적을 당하였다. 분가 제적의 실질적인 원인으로는 당시의 다자이가 비합법 운동에 가담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도쿄대학 불문과에 입학한 다자이는 구도 에이조의 끈질긴 권유에 못 이겨 좌익 운동에 가담하였고, 당시의 작품인 『지주 일대』와 『학생군』은 착취계급이나 국가 권력에 대하여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1931년 구도가 검거된 이듬해에 자수한 이후로 비합법 운동에서 탈락하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고향 집으로부터 분가 제적을 당한 지 얼마 안 되어, 다자이는 긴자(銀座) 카페의 호스테스와 함께 가나가와 현 에노 섬에서 투신 자살을 기도하였는데, 다자이만 살아남아 가마쿠라(鎌倉)의 병원에 수용되었다. 이 자살에 관하여는 『도쿄 팔경』『인간실격』『광언의 신』『허구의 봄』『광대의 꽃』등에서 다자이 스스로가 언급하고 있다. 다자이는 자살 방조 혐의로 기소 유예 처분을 받았으며, 이때의 체험 역시 평생 동안 죄의식으로 남게 되었다.

퇴원 이후의 다자이는 삶에 대한 희망을 잃고 방황을 하던 중, 대학을 졸업할 가망이 없게 되자 미야코 신문사의 입사 시험에 응했지만 그것마저 실패한다. 그 후 1935년 가마쿠라의 산중에서 혼자 자살을 기도하고, 결국 미수에 그쳤다. 같은 해 ‘일본낭만파’에 합류하였으며 『역행』으로 제1회 아쿠타가와상 차석을 차지하지만 심사 결과에 불만을 품고 심사 위원이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항의하는 글을 발표한다. 그 후 복막염으로 입원했고, 처방된 마약성 진통제 파비날에 중독되어 정신착란적인 문체를 선보이기도 한다. 마약 중독 치료를 위해 정신병원에 강제로 수용되었으며, 1936년 입원하여 있는 동안 하쓰요가 불륜을 저지른 사건이 계기가 되어 이듬해 두 사람은 미나카미(水上) 온천에서 동반 자살을 기도한다. 이 자살도 미수로 끝나고, 마침내 하쓰요와 결별한 다자이는 후지 산 기슭에서 홀로 지내며 마음의 평온을 되찾는다.

1939년 미치코(石原美知子) 부인과의 결혼으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된 다자이는, 1945년 일본이 패전할 때까지 활발한 작가 활동을 하며 소시민으로서의 생활을 즐겼다고 할 수 있다. 다자이가 후지 산 기슭에서 홀로 지내던 당시의 생활을 기록한 것이 『부악백경』이다. 1945년 일본 패전 후 전쟁에서 패하여 윤리적 기반을 잃은 일본 사회에 가장 어울리는 무뢰파 작가로서, 이른바 '유행 작가'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사카구치 안고, 오다 사쿠노스케 등과 함께 ‘데카당스 문학’, ‘무뢰파 문학’이라 불리며 패배감에 쌓여 있던 일본 젊은이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다.

다자이의 최후는 비참했다. 폐의 질환이 악화되어 각혈은 물론, 계단도 제대로 오르내리지 못할 지경에 이른 다자이는, 1948년 6월 13일 밤 동거 중이던 야마자키 도미에와 다마 강 수원지에 뛰어들어 자살하였다. 그 시체는 닷세 후인 19일 아침, 썩어 짓무른 채로 발견되었다. 그날이 바로 다자이의 서른아홉 번째 생일이었다.

[YES24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