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인간의 나약함을 탁월하게 묘사하는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새롭게 읽는다. 순수하고 여린 심성의 젊은이가 인간 사회의 위선과 잔혹성을 견디지 못하고 파멸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로,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못한 채 인간 실격자로 전락한 주인공의 내면을 치밀한 심리묘사로 기록하였다. 다자이 작품 속의 타락과 자기파괴적 언행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후 공황상태에 빠진 일본 젊은이들의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다자이 작품은 기성세대의 가치관 및 윤리관, 도덕관이 패전과 함께 붕괴되면서 기존 사회에 속한 모든 것을 거부하고 새로이 시작하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을 담고 있다. 어떻게든 사회에 융화하고자 애쓰고, 인간에 대한 구애를 시도하던 주인공이 결국 모든 것에 배반당하고 인간 실격자가 되어가는 패배의 기록인 이 작품은 그런 뜻에서 현대 사회에 대한 예리한 고발 문학이라 할 수 있다.
함께 실린 작품, 「직소」는 ‘나약한 인간으로서의 유다’라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유다가 예수를 고발하는 자리에서 늘어놓는 이야기를 마치 독자가 현장에서 함께 듣고 있는 것처럼 서술한 작품으로, 예수를 흠모하고 사랑했지만 그 사랑이 거부당한 데 대한 분노와 반발심으로 예수를 팔아넘기게 되는 유다의 갈등과 번민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YES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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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의 나약하고 순수한 영혼이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서서히 파멸해 가는 과정을 어쩌면 이토록 선명하게 짚어 낼 수 있을까.
안개속에 가려진 실체, 희미하게 느낄 수는 있지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인간 내면의 갖가지 모습들을
이처럼 확연하게 드러내보인 소설을 읽은 기억이 없다.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으로는 <사양>을 읽은 것이 전부였던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명성이 과장된 것이 아니었음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요조'는 작가의 페르소나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요조는 이름 있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도련님이라 불리우며 집안에서 귀하게 자라났다.
겉으로보기엔 명랑하고 쾌활하고 익살스러운 장난꾸러기였지만, 두뇌 또한 명석하여 성적은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까지 늘 상위권이었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너무도 나약하고 순수하여 사람에게 화나게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거부의 의사표시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실은 사람에 대해 희망을 찾기를 누구보다 원했으면서도 원하면 원한만큼 배신을 당해야만 했던 그였던 것이다.
요조가 일찌감치 사람에 대한 혐오를 갖고 마음의 문을 닫은 것은 스스로 상처받기를 극도로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상처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미리
절망하고 그 절망의 현실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납득시키고자 한다.
희망을 갖는다는 일은 곧 두려움이라는 말과 같은 동의어가 되기 때문이다.
겉은 짐짓 다른 얼굴로 친절하게 사람들을 대하지만, 자신의 진정한 친구도 가족도 없는 황량한 들판의 한 마리 작은 새처럼
그에게 세상은 늘 춥고 외로운 곳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신은 점점 세상으로부터 기생하며 살아가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열등감과 자책과 죄의식속에서 점점 황폐해갈 뿐이다.
야비하고 졸렬하고 치사한 인간 본성을 별 반성없이 받아들이며 사는 인간들은 어떻게든 이 세상과 화해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요조와 같이 옳고 깨끗하고 순수한 것만이 실로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세상과 타협한다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가 살아갈 수 있는 길은 그런 자신에 대한 자학이라는 길밖에 달리 없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세상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어쩌면 알러지 환자들에게 알러지의 원인이 되는 소량의 균을 일정한 기간 계속 투여해주면
그 알러지 반응에 둔해지게 된다는 이치처럼 ,수치나 비열함같은 감정들을 조금씩 주사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대화하듯이 술술 풀어내는 글 솜씨하며, 수기 형식을 빌어 온 한 개인의 자기 고백을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이야기 하고 있는
이 책은, 그의 책 대부분이 그렇듯이 다자이 자신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다.
자신을 모티브로 삼는다는 것은 끊임없는 자기 반성과 자기 부인을 통한 지독한 자기 통찰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의 작품이 비록 소설이라는 허구의 형식을 빌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며 작가의 시대의 어둠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방황하며 고뇌하면서 이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구원받을 수 없는 좌절과 패배의식을 우리가 함께 느낄 수 밖에 없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시대의 변혁기에는 반드시 정치적 시행착오가 있고, 개인으로 보면 가치관의 혼란이 찾아온다.
그러나 아무도 저항하는 이 없이 순순히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사회라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적어도 지식인은 그에 대해 깊이 고민해봐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시대적 책임을 느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자이 오사무가 지금 일본인들에게 새롭게 추앙받는 이유중 하나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덧붙여...
책 마지막 장에 이 책의 번역자가 쓴 <작품 해설> 또한 작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김춘미라는 이름은 내겐 익숙한 이름으로 우리 학교의 교수님이셨다.
그 분께 수업을 받았던 나는 그때의 강단에 서 계신 교수님의 모습을 회상하며 잠시 추억에 잠기기도 하였다.
교수님의 작품해설은 '혹시 다자이 오사무에 관한 논문을 쓰신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작가에 대해 아주 많이, 깊이
연구하고 쓴 글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이 책은 나에게 일본 고전에 대한 놀라움과 관심을 갖게 해준 책으로 기억이 될 것이다.
저자소개
다자이 오사무
[YES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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