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
박성룡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하고 그를 부를 때는
우리들의 입 속에서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나거든요.
바람이 부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몸을 흔들까요.
소나기가 오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또 몸을 통통거릴까요.
그러나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풀잎' 하고 자꾸 부르면,
우리의 몸과 맘도 어느덧
푸른 풀잎이 돼버리거든요.
<1966>
김훈의 에세이 <자전거 여행>에서 나오는 한 구절을 옮겨본다.
'숲'이라고 모국어로 발음하면 입 안에서 맑고 서늘한 바람이 인다.
자음'ㅅ'의 날카로움과 'ㅍ'의 서늘함이 목젓의 안쪽을 통과해나오는 'ㅜ'모음의 깊이와 부딪쳐서
일어나는 마음의 바람이다.
'ㅅ'과 'ㅍ'은 바람의 잠재태이다. 이것이 모음에 실리면 숲 속에서는 바람이 일어나는데, 이때'ㅅ'의 날카로움은
부드러워지고 'ㅍ'의 서늘함은 'ㅜ'모음 쪽으로 끌리면서 깊은 울림을 울린다.
그래서 '숲'은 늘 맑고 깊다. 숲 속에 이는 바람은 모국어 'ㅜ'모음의 바람이다. 그 바람은'ㅜ' 모음의 울림처럼,
사람 몸과 마음의 깊은 안쪽을 깨우고 또 재운다. '숲'은 글자 모양도 숲처럼 생겨서, 글자만 들여다보아도 숲 속에
온 것 같다.
숲은 산이나 강이나 바다보다도 훨씬 더 사람 쪽으로 가깝다. 숲은 마을의 일부라야 마땅하고, 뒷담 너머가
숲이라야 마땅하다.
-'가까운 숲이 신성하다' 중에서 -
아마 작가 김훈이 시인이었다면 '숲'에 대해 어떻게 자신의 느낌을 표현했을까?
아마도 위 '풀잎'같은 시가 나오지 않았을까?
'숲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숲~' 하고 그를 부를 때면 우리들의 몸과 맘엔 맑고도 깊은 서늘한 바람이 불어요... ' 뭐, 이런...^^;;
시인과 시인이 아닌 자의 표현은 이렇듯 다르다.
그러나 어느쪽이든 '퍽도' 아름다운 언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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