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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정원은 환하다 / 이은림

kiku929 2010. 1. 11. 13:59

 

 

                           

 

 

당신의 정원은 환하다

 

 

                                    이은림


당신의 정원은 분주하다
구름 다발을 든 꽃나무들 곁에서
당신은 천천히 구름을 뜯어 먹고
질 좋은 비를 뱉는다
곳곳에 꽂히는 빗소리들
당신의 몸엔 꽃잎이 열린다
주렁주렁 꽃잎을 달고
정원 입구에 서 있던 당신
지나가던 바람이 꽃잎을 흔든다
멀리 있던 강물이 정원 가까이 왔다
당신은 오래 감추었던 넝쿨손을 뻗는다
가느다란 손가락들이 강물을 움켜쥔다
당신은 정원의 오래된 주인
당신이 아끼는 나무들과 꽃들은
이미 떠날 채비를 끝냈다
강물 깊숙이 몸을 담그고
당신의 냄새를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당신을 받아먹고 점점 실해지는 강물
하여, 이제 당신의 정원도 환하다
끝없이 환하다

 

 

 

 

 

난 포플러나무를 좋아한다.

그러니 나의 정원엔 아주 커다란 포플러 나무가 있겠다.

내가 사는 집은 그 포플러 나무둥치 아래.

난 그곳에서 발전소처럼 매일매일 적당한 에너지를 공급한다.

그럼 그 나무는 갓 찍어낸 동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잎들을 부지런히 만들어내겠지.

그 포플러잎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면 꼭 탬버린을 흔드는 것만 같다.

그 소리는 나를 행복하게 해주어서 온종일 혼자서도 심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침마다 나무가 전해주는 신문도 읽고, 비오는 날은 잠도 자면서...

가끔은 어디선가 날아온 홀씨도 내려앉아

그 나무 아래에 풀도 돋아나고 꽃이 피는 날도 있을 테지.

그렇게 나의 정원은 점점 환해지고 환해질 것이다.

포플러 나무 한 그루만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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