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윤성택
계단을 오르다가 발을 헛디뎠습니다
들고 있던 화분이 떨어지고
어둡고 침침한 곳에 있었던 뿌리가
흙 밖으로 드러났습니다
내가 그렇게 기억을 엎지르는 동안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내 안 실뿌리처럼
추억이 돋아났습니다
다시 흙을 모아 채워 넣고
앞으로는 엎지르지 않겠노라고
손으로 꾹꾹 눌러주었습니다
그때마다 꽃잎은 말없이 흔들렸습니다
위태하게 볕 좋은 옥상으로
너를 옮기지 않겠다고
원래 자리가 그대 자리였노라고
물을 뿌리며 꽃잎을 닦아내었습니다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창밖은 부옇게 커튼 한 자락을 드리운 날씨입니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릴 잎새 하나 없으니 마치 정지된 화면 같아요.
정중동의 겨울,
사람들은 이제 저마다의 기억속에 침잠되어 긴 동면에 들겠지요.
자신을 피사체로써 바라볼 수 있는 노을같은 시간...
내가 겨울을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기억의 차단기 너머로 가끔식 누군가의 모습이 보이고 또 사라지고...
하지만 그 모습은 예전처럼 가슴을 후벼우는 것이 아니구요.
그저 기억 속에 깃든 조금은 허무하고 가벼운 것이지요.
편안해진 기억...
나직히 그대의 안부를 물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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