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아침
안도현
눈 위에 콕콕 찍어 놓은 새 발자국
비틀거리지 않고 걸어간 새 발자국
한 글자도 자기 이름을 남겨두지 않은
새 발자국
없어졌다, 한 순간에
새는 간명하게 자신을 정리했다
내가 질질 끌고온 발자국을 보았다
엉킨 검은 호스 같았다
날아 오르지 못하고,
나는 두리번 거렸다
시집 -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2004년 창비)
염낭 거미가 있다.
염낭 거미는 알을 낳을 준비가 되면 잎을 싸고 방을 만들어 그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새끼를 지키고 새끼를 부화하게 되면 어미는 살아있는 채로
자신의 새끼들에게 먹이가 되어준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나도 염낭거미처럼 그렇게 깨끗하게 내 한 몸 누군가에게 온전히 바치고 죽어도 좋을 것 같다고.
내 몸으로 자식을 키우는 것은 염낭거미와 마찬가지겠지만
삶이 어떤 때는 남루하단 생각이 든다.
새의 발자국처럼, 한 순간에 자신을 정리하는 그 간명함...
그에 비해 나의 발자국은 질질 끌려오는 밧줄처럼 고되다.
어느 한 순간도 산뜻하게 나를 정리해본 적이 없으니,
살아온 나날이 내겐 연민이었다.
오늘도 나로인해 질척거린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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