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직선과 원 / 김기택

kiku929 2013. 1. 23. 11:03

 

 

 

                                                                      

                                         -  '문수사' 앞 마당에서 두 해를 연거푸 만났던.... 잘 지내고 있을까?

 

 

 

 

 

 

직선과 원

 

 

김기택

 

 

 

옆집에 개가 생김.

말뚝에 매여 있음.

개와 말뚝 사이 언제나 팽팽함.

한껏 당겨진 활처럼 휘어진 등뼈와

굵고 뭉툭한 뿌리 하나로만 버티는 말뚝,

그 사이의 거리 완강하고 고요함.

개 울음에 등뼈와 말뚝이 밤새도록 울림.

밤마다 그 울음에 내 잠과 악몽이 관통당함.

날이 밝아도 개와 말뚝 사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음.

 

직선:

등뼈와 말뚝 사이를 잇는 최단거리.

온몸으로 말뚝을 잡아당기는 발버둥과

대지처럼 미동도 않는 말뚝 사이에서

조금도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는 고요한 거리.

원:

말뚝과 등거리에 있는 무수한 등뼈들의 궤적.

말뚝을 정점으로 좌우 위아래도 요동치는 등뼈.

아무리 격렬하게 흔들려도 오차 없는 등거리.

격렬할수록 완벽한 원주(圓周)의 곡선.

 

개와 말뚝 사이의 거리와 시간이

이제는 철사처럼 굳어져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음.

오늘 주인이 처음 개와 말뚝사이를 끊어놓음.

말뚝 없는 등뼈 어쩔 줄 모름.

제자리에서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달리기도 함.

굽어진 뜽벼 펴지지 않음.

개와 말뚝 사이 아무것도 없는데

등뼈, 굽어진 채 뛰고 걲인 채 달림

말뚝에서 제법 먼 곳까지 뛰쳐나갔으나 곧 되돌아옴.

말뚝 주위를 맴돌기만 함.

개와 말뚝 사이 여전히 팽팽함.

 

 

*시집 <소>/ 문학과 지성사, 2005

 

 

 

 

 

김기택 시인의 시중에서 내가 참 좋아하는 시이기도 하다.

 

말뚝에 묶인 개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감정은 조금도 드러내지 않은 채, 철저히 객관적 사실만을 추구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메시지는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

배우는 가만히 있는데 관객만 울게 되는 연극이라고 할까...

 

사람은 누구나 말뚝에 매인 존재이다.

말뚝에 매인 줄과의 직선거리에 따라 자신이 속한 원의 크기만 달라질 뿐,

어떤 식으로든 삶은 인간을 구속하게 된다.

 

가끔 그런 구속이 싫어서 자유를 꿈꾸기도 하지만

'말뚝에서 제법 먼 곳까지 뛰쳐나갔으나 곧 되돌아'오는 개처럼

인간은 다시 본래의 주위를 맴돌며

보이지 않는 직선과 원의 굴레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저,

그런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고 보여줄 뿐

슬프다, 기쁘다, 아무 말이 없다.

 

 

*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만든 원이 삶의 굴레라고 해도,

그 굴레가 크든 작든, 화려하든 소박하든,

그 곳은 내 집에 딸려있는 정원같은 곳이라고....

 

나의 정원을 알뜰 살뜰 부지런히 일구고 가꿔가며 사는 삶,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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