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이미지에서...
어머니의 배추
정일근
어머니에게 겨울 배추는 詩다
어린 모종에서 시작해
한 포기 배추가 완성될 때가지
손 쉬지 않는 저 끝없는 퇴고
노란 속 꽉 찬 배추를 완성하기 위해
손등 갈라지는 노역의 시간 있었기에
어머니의 배추는
이 겨울 빛나는 어머니의 詩가 되었다
나는 한 편의 詩를 위해
등 굽도록 헌신한 적 없어
어머니 온몸으로 쓰신
저 푸르싱싱한 詩 앞에서 진초록 물이 든다
사람의 詩는 사람이 읽지 않은 지 오래지만
자연의 詩는 자연의 친구가 읽고 간다
새벽이면 여치가 제일 먼저 달려와 읽고
사마귀가 뒤따라와서 읽는다
그 소식 듣고 종일 기어온 민달팽이도 읽는
읽으면서 배부른 어머니의 詩
시집 속에 납작해져 죽어버린 내 詩가 아니라
살아서 배추벌레와 함께 사는
살아서 숨을 쉬는 詩
어머니의 詩
*시집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문학과 지성사
시인의 말처럼 앉아서 종이 위에 쓰는 시보다는
땀과 정성으로 가꾸어진 배추 한 포기가 살아 숨쉬는 시가 된다.
아이들이에게 어떤 좋은 말이라고 해도
몸소 보여주는 일보다 훌륭한 말은 없다.
입으로 아무리 정치를 논하고 시대를 탓해도
홀로 침묵으로 시위하는 이들이 세상을 바꾼다.
약자를 위해 직접적으로 일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약자의 편에 서겠다고 말을 해도
정녕 약자의 아픔은 이해하지 못한다.
.
.
.
몸으로 겪어내는 일이야말로
진정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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