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 안도현

kiku929 2013. 5. 11. 10:43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안도현

 

 

 

  어릴 때, 두 손으로 받들고 싶도록 반가운 말은 저녁 무렵 아버지가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정육점에서 돈 주고 사온 것이지마는 칼을 잡고 손수 베어온 것도 아니고 잘라온 것도 아닌데
  신문지에 둘둘 말린 그것을 어머니 앞에 툭 던지듯이 내려놓으며 한 마디, 고기 좀 끊어왔다는 말
  가장으로서의 자랑도 아니고 허세도 아니고 애정이나 연민 따위 더더구나 아니고 다만 반갑고 고독하고 왠지 시원시원한 어떤
결단 같아서 좋았던, 그 말

 

  남의 집에 세 들어 살면서 이웃에 고기 볶는 냄새 퍼져나가 좋을 거 없다, 어머니는 연탄불에 고기를 뒤적이며 말했지

 

  그래서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게 방문을 꼭꼭 닫고 볶은 돼지고기를 씹으며 입안에 기름 한입 고이던 밤

 

 

 

 

 

 

 

 

안도현 시인의 시는 쉬우면서도 읽고나면 뭔가 애잔해진다.

이 시도 그렇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립고

함께 밥상에 둘러앉아 식구들과 밥을 먹던 그 시절이 못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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