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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 / 조항록

kiku929 2014. 2. 22. 01:59

 

 

        

 

 

 

근황

 

 

 

조항록

 

 

 

어떻게 살아요

그냥,
많은 것
포기하면서 잊으면서,
손살같이,
차갑게,
해묵으면서 시큰해지면서,
세상의 모든 굴욕에 연민을 느껴
8월의 저녁에
눈이 나리고 눈이 나리고
눈사람이 되어가면서,

그래요
어떻게든 살겠죠
묻는 당신도

 

 

 

 

 

산다는 것은 거창하지도, 그럴듯한 명분이 필요한 일도 아니라고 말한다면 삶에 욕보이는 일일까.

지금 와서 내가 생각하는 삶은 우아한 것과는 거리가 먼, 쪼잔하고 비겁하고 질척거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난 그러한 삶이 눈물겹게 아름답다.

 

그런 연유일까.

예전에는 꽃 지는 모습이 추하다는 이유로 외면했던 목련꽃이 봄이면 유독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은.

자기의 발 밑으로 떨어진 꽃들이 흉한 몰골로 변해가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는 목련에게서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숭고한 落花를 본다.

 

한때의 영광과 그 끝의 보잘것 없는 모습을 끝까지 견뎌내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삶을 살아낸 것이라는 생각.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사랑이 뒤에 남긴 그 모든 것을 경험했을 때에야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인생도 세월이 안겨주는 굴욕과 고독과 불편을 모두 이겨냈을 때,

비로소 한 생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런지.

 

그래, 어떻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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